벼르고 벼르던 토산모 산행을 다시 한다는 기쁨으로
공연히 들떠 있는 내 마음에
비가 올 지도 모른다는 일기 예보는
한점의 먹구름이 되어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비가와도 산행하는 토산모의 원칙을 상기하면서
만일을 대비하여 아이젠, 겨울 장갑, 헤드랜턴을 챙긴다.
할머니 가게에 정시에 도착하니 양섭이가 벌써 와있다.
만식 형은 대우산악회 회원들과 9시 30분에 이미 출발을 했다고 한다.
잠시 후 정성교, 허길행, 그리고 서윤섭 회원이 나타난다.
느닷없이 토산모 총무인 양섭이가 늦게 도착한 윤섭에게
만원을 더 내라고 한다.
지난번 토산모 운영위원회(?)라는 정체불명의 모임에서
지각하는 회원에게 벌금 만원을 걷기로 결의했다는 주장이다.
윤섭이가 마지못한 모습으로 만원을 꺼낸다.
날을 잔뜩 찌푸렸는데도 비는 오지 않고 온도도 적당하다.
오늘은 용어천 계곡 길 대신에
거북 굴을 경유하여 도봉주능선을 오른 후에
오봉 능선을 경유 하여 점심을 들고 우이 남능선을 경유하여
하산하기로 한다.
그저 두세 번 산행을 빠진 것뿐인데도
산길을 걸어 오르는 허벅지에 힘이 없어
나는 잠시 고전을 한다.
내 체력은 산행할 때 마다 여지없이 본 모습을 드러낸다.
거북굴을 향해 가는 골자기 주변 암벽 위 서너 곳에
물길들이 얼어붙어 작은 빙벽을 이루고 있다.
가을 내내 떨어진 냑엽들은 산길에 두텁게 쌓여있고
계곡은 깊은 정적으로 꽉 차 있다.
걸어 오르는 우리들의 사각거리는 발자국 소리만
그 고요함을 간간히 깨트리고 있었다.
도봉주능선에 오르자 북사면으로 눈들이 제법 쌓여 있다.
모두들 아이젠을 꺼내 착용을 한다.
역시 준비성들이 철저한 토산모 대원들이다.
오봉으로 연결된 능선 길을 따라 가는데 설경이 일품이다.
사진도 찍고 인상적인 빙화 얘기도 나누며
오늘 토산모 산행에 온 것을 모두 자축한다.
집을 나설 때는 이런 저런 걱정을 미리 했어도
산행을 하다보면 “역시 오길 백번 천번 잘했다” 하는
그런 기쁨을 느낀 적이 어디 한두 번 이랴 !!!
흰눈으로 치장한 도봉의 산과 계곡들은
토산모 대원들의 마음을 환상의 세계 속으로 초대한다.
답답한 마음마저 푸근한 눈 속으로 녹아들어간다.
2006년의 뒷자락도 우리 곁을 떠나려고
멀리서 다가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환상의 설경을 배경으로 모습들을 잡아가며
연속 사진들을 찍어 댄다.
양섭이는 인물위주의 촬영을 강조하나
나는 멋있는 설경도 찍으라고 권한다.
오봉 샘터 옆 토산모의 단골 아지트에서 점심을 든다.
청산이 집에서 정성껏 가져온 생 오징어를 더운물에 살짝 대쳐내고
초고추장에 얼른 찍어 바른 후에 쫄깃한 맛을 서로 음미한다.
우리는 그것을 “생 오징어 샤워시키기”라고 불렀다.
각종 김밥과 반찬들 그리고 오징어 샤워한 물로 만든
절묘한 맛의 라면을 들어가면서
건강 도사 청산의 토산모 대원 건강진단과
연속 산상 강좌를 무료 수강한다.
우이암 곁을 돌아 원통사를 경유하여 하산을 계속한다.
우촌 식당에 들어서니 만식 형과 먼저 온 대우산악회 팀이 반겨준다.
대우는 망년 모임이라 그런지 벌써 분위기가 한창 달궈져 있다.
대우회원이 가져온 18년 숙성 고급 위스키로 채운 잔들을 높이 들며
대우/토산모 합동 건배를 한다.
곧이어 목이 불편한 국전이와
감기 걸려 산행 결석을 한 교춘 형도 뒤풀이에 합류한다.
토산모는 일차 뒤풀이가 끝난 다음에 다시 의결을 거쳐
맥주, 그리고 칼국수를 들어가면서
캐나다와 미국 여행을 할 서윤섭 회원과
또 내일 동네 산악회 산행을 할 허길행 회원을 위한
격려의 말들을 다시 주고받는다.
산행방 메뉴
안상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