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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계획
작성자 오영훈
작성일 2006/06/12 (월)
분 류 OM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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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등반 후기


안녕하십니까. 오영훈입니다.
에베레스트를 다녀온다고 시끄럽게 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관심과 격려를 아껴주지 않으신 여러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원정 기간 내내 산악회 선후배님들의 존재는 저에게 무척 큰 힘이 됐습니다. 그리고 금전적으로도 여러 분들께서 도움을 주셔서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직접 인사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등정하지 못한 것은 그저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물론 저도 무척 아쉽고요. 하지만 오히려 실패가 더 값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등정한 사람에게는 “와 등정을 축하한다!”라고 반가워하겠지만, 저에게는 모두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한다!”라고 하더군요.
어찌 보면 등정을 실패함으로써 이렇게 무사히 등반을 마치고 다시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기뻐하고 축하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 아니겠습니까?

에베레스트 등반기를 적어 보았습니다.
그저 원정기간 중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내용을 큰 수정 없이 옮겼습니다. 다소 읽기 불편한 점이 있을 듯 합니다.


에베레스트 등반기  / 오영훈

-등반개요-
기간: 3.25 ~ 5.25 (62일)
대상지: 중국 티베트 에베레스트(8848m)
루트: 북릉~북동릉 노멀루트
대원: 총 17명 (대원 14명, 방송 3명)
박영석 (대장, 동국대83, 영원무역)
허영만 (식량)
김연수 (촬영, 동국대)
이용묵 (촬영, 크로니산악회)
최기순 (의료, 강릉대79)
전창 (동아일보 기자)
허정 (촬영)
오희준 (등반부대장, 제주대89)
오영훈 (인터넷중계, 서울농대97)
이형모 (장비, 관동대97)
김영미 (행정, 강릉대99)
유일삼 (식량, 동국대00)
이해민 (의료, 연세대04)
이용택 (카메라감독)
김민찬 (SBS 기술)
이강 (SBS 기자)
김현욱 (SBS PD)
등반결과: 5월 11일 박영석, 오희준, 이형모 및 셰르파 4명 등정, 박영석, 장부 셰르파 남릉 노멀루트로 횡단 성공

-등반일정-
3월 25일 1차 대원 출발 (인천공항 -> 네팔 카트만두)
3월 28일 2차 대원 출발
3월 30일 3차 대원 출발
4월 2일 선발대 베이스캠프로 출발
4월 5일 4차 대원 출발
4월 7일 선발대 베이스캠프 도착
4월 10일 후발대 베이스캠프 도착

-등반일지-
4월 1일
늦은 밤, 네팔 카트만두의 한 골목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 셰르파들과 한국인 대원들이 뒤섞여 수많은 카고백, 담프라박스, 석유통 등등을 커다란 트럭에 싣느라 부산하다. 작은 게스트하우스 앞에 많은 짐들을 5톤 가량 되어 보이는 탑차에 싣고 있다.
이곳은 카트만두 내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거리인 타멜 거리. 이 거리의 한 편에 자리한 한국 식당 겸 게스트하우스인 빌라에베레스트다. 속속들이 이곳에 도착한 원정대원들. 박영석 대장이 이끄는 ‘Park's trans-Everest’ 팀 뿐만 아니라 행정 등 많은 과정을 함께 하는 전남대팀, 제주연맹팀, 제주설암산악회팀 등 총 네 팀이 다음날 베이스캠프로 출발하기 위해 트럭에 짐을 싣고 있는 중이다.
종일 짐을 정리하고 포장한 뒤 셰르파들, 대원들, 그리고 빌라에베레스트의 직원들까지 모두 나와 짐을 함께 옮겼다. 밤늦게 귀가하는 차량들, 경찰들 등등 할 것 없이 한밤중의 소란을 신기한 듯 구경하고 지나간다.
짐은 언제나 그렇듯 세관 통과가 관건이다. 특히 에베레스트 북릉 등반은 다시 네팔에서 중국으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국경을 통과할 것을 생각해서 신경을 써야 한다. 무전기, 위성전화 등은 모두 깊숙이 감춘다. 티베트 즉 중국 정부가 이런 장비들을 안 받아 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달 전에 신청을 해야 했던 것이다. 그것도 거액의 사용허가비용을 내고서 말이다.
우리 원정대의 규모는 상당히 큰 편이다. 지휘·위계 체계가 그럴수록 중요한 구심점이 된다. 대장인 영석형은 팀 내에서 학번이 제일 높은 것도 아니요, 카리스마가 절대적인 것도 아니다. 인간적으로 사람을 잡아끌기 때문도 아니다. 다만 형의 등반 경력(해외원정등반만 60회 가량, 그 중 8000미터 이상 등반만 서른 번이 넘는다)과 그로부터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노하우, 경험 등이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4월 3일
중국의 국경도시 장무를 거쳐 니알람(3700m)에 도착했다. 국경도시 장무는 티베트와 네팔을 연결하는 고갯길에 위치해 있다. 깎아지른 계곡 절벽에 길을 뚫어 사람의 왕래가 잦다 보니 결국에는 도시도 생기는가 보다. 주변을 둘러봐도 경작지나 가축 등을 기르는 게 전혀 보이질 않는다. 세관을 통과할 때는 세관원에게 400$을 찔러주고 무사히 빠져 나왔다. 장무는 국경도시답게 환락가도 제법 번창해 있고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이들이 섞여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이려니 하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그 좁은 장무의 거리를 하루 700대의 10톤 트럭이 운송한다. 길은 온통 트럭의 경적소리와 매연으로 꽉 차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사람들의 표정도. 티베트계 장족, 티베트 인들 외에도 네팔리, 인디언, 한족 관리들 등 많은 인종이 뒤섞여 있다. 우리 셰르파들조차 이들의 다양한 언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중국과 네팔은 2시간 15분의 시차가 있다. 두 나라 모두 재미있는 시각관념을 갖고 있다. 네팔은 인도와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인도보다 15분 빠른 시각을 사용한다. 그리고 중국은 북경을 중심으로 그 넓은 중국 대륙이 같은 시간대를 공유한다. 그래서 네팔과 티베트는 경도 상으로 그리 차이가 나지 않음에도 큰 시차를 가진 것. 하지만 에베레스트 등반 때에는 셰르파들이 사용하는 네팔 시간대를 통상 사용한다.
니알람은 장무로부터 차량으로 약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높은 봉우리들 사이 협곡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작은 평원에 자리해 있다. 어느 정도 고도에 올라오니 쌀쌀한 것은 둘째 치고 숨이 차오고 계단을 오르기 힘든 게, 벌써 고소증세를 심하게 느끼는 대원들도 있다. 게스트하우스들의 시설들도 참 초라하다. 낯선 환경에 고소증세까지 오니 사람들이 힘겨워하기 시작하는 곳이다.
중국산악연맹(CMA)에서는 국경을 통과하면서부터 모든 것이 패키지로 제공된다. 이것도 사회주의 제도로부터 영향 받은 것일 텐데, 모든 국민들이 우리나라 주민등록제도와 유사한 호구제로 등록되어 있고 먹고 사는 것도 정부와 깊게 연결된 이곳 중국이니 만큼, 등반가들은 4500달러에 달하는 입산료를 내고 나면 먹는 것부터 시작해서 숙소, 그리고 베이스캠프에 도착해서도 필요한 것들을 정부연락관을 통하면 그들의 협조 아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입에 안 맞는다는 게 당장은 더 큰 문제였다. 우리가 묵는 숙소 맞은편에 CMA가 정규적으로 ‘터놓고 있는’ 식당인 듯한 곳에서 식사를 했다. ‘모래알밥’에 이름 모를 고기 조림, 야채 데침, 커리 양념 등을 반찬으로 다들 맛있는 듯 식사를 한다.
서빙 하는 티베트 아가씨가 맛있는 고기 조림 반찬을 썩썩 잘 내 주길래, 허겁지겁 밥을 밀어 넣는 와중에도 아가씨 칭찬을 농담 삼아 다들 한 마디씩 한다.
원정등반은 물론 더 어려운 벽, 어려운 등반을 목표로 내세우지만, 원정등반을 잘 한다는 것이 반드시 등반력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원정등반은 새로운 문화, 음식 그리고 사람들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모래알밥’을 남들보다 잘 먹고 견디는 게 꼭 등반을 더 잘하는 것으로 귀결되지는 않지 않겠는가?

4월 5일
“떠시 델리(안녕하세요)”
“보므워! 투지치!(아가씨, 고마워요)”
티베트사람들과의 만남은 니알람 이후 계속이다. 버스 두 대와 트럭 세 대의 대부대인 우리 팀은 니알람을 출발, 4시간여를 달려 딩그리(4300m)에 도착했다. 도중 5150m, 베이스캠프와 같은 고도인 랑리라 고개에 잠시 차를 세워 히말라야의 파노라마를 감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꾸 버스에 앉아 잠만 자고 싶은 게, 슬슬 고소증세가 찾아오는 듯싶다.

4월 7일
딩그리에서도 이틀을 보냈는데, 고소증세로 몹시 앓았다. 어젯밤 아스피린과 종합감기약 두 알씩 먹고 누웠다가 결국에는 전남대 96학번 윤현식 형이 엉덩이에 주사 한 대 놔 줬다. 현식형은 사실 전남의대 산악부 소속으로 현재 의대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상태다.
주사가 효과가 있었는지 아침은 몸이 좀 거뜬하다. 이른 아침 딩그리를 출발하려는 데 트럭 한 대와 버스 한 대가 영 시동이 안 걸려 다른 차로 끌어 시동을 건다고 소동을 피웠다. 그리고 선발대와 트럭들이 먼저 출발해 베이스캠프를 설치하는 게 애초 계획이었는데, 트럭들이 좀 느려야지, 나중에 후발대가 탄 버스가 앞서 간 트럭들을 따라잡는 웃지 못 할 일도 발생했다.
아직 베이스캠프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 두고 온 사람들이 그립다. 점차 덜 생각하게 되겠지만.

4월 10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뒤 계속 고소증세로 끙끙 앓았다. 아무래도 나는 4000~5000m 부근이 고비인 것 같다. 지난 몇 번의 원정등반 때에도 모두 이 고도에서 심하게 고생했었다. 베이스캠프 고도는 5100m. 베이스의 고도로는 무척 높은 편이다.
오늘은 이형모, 유일삼 대원과 함께 고소적응 차 ABC로 가는 길을 좀 오르다가 내려왔다. 몹시 숨이 찬다. 07시에 출발해 10시까지 운행한 후 되돌아 와 12시에는 다시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점심 식사를 한 숟갈 떴을 까, 지프 소리가 들려 얼른 나가보니 후발대 대원들이 도착했다. 다들 버선발로 뛰어나와 이들을 반긴다. 힘든 만큼 성과는 값지고 행복은 짙어진다는 말, 산에 다니는 사람들만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을 쓰는 한국에서 최근 라디오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공부하는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인 듯 했는데 “공부하느라 힘드시죠. 하지만 힘들게 한 만큼 그 열매는 달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누구나 이해하고 누구나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자신의 몸을 그런 상황에 던져 넣기란 도저히 쉽지 않을 것이다.

4월 9일
도저히 산에는 가고 싶지 않게 하는 고소증이 여전하다. 무엇보다 두통이 끔찍해서 뇌가 쏟아질 것만 같다. 그리고 온통 다 뱉어낼 것만 같은 기침, 재채기에는 온갖 용을 써야만 한다.
중국 시각으로 밤 11시가 다 되어간다. 밖엔 바람이 심심치 않게 불어 텐트 문에 걸려 있는 저울이 땡땡거리며 울어댄다. 아직 잠들지 않고 저희끼리 두런거리는 셰르파들의 목소리, 옆에 누워 잠을 청하거나 혹 다른 일들을 보고 있는 대원들, 그리고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까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지 사흘째다. 한참은 된 것 같다. 그러나 고소적응은 요원하기만 하다. 희준형, 용택형, 형모, 일삼이 등 선발대로 들어온 우리 5명은 그래도 그럭저럭 잘 해 나가고 있는 것 같다. 도착한 뒤로 캠프설치며 주변정리, 그리고 ABC로 올릴 짐 포장 등 많은 작업들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내일이면 모든 대원들이 BC로 올라온다. 비로소 두 번째 출발이 다가온다.
할 일이 많고, 또 많이 하고 싶지만 요 며칠간은 스스로 많은 부족함을 느낀 기간이었다. 우선 몸이 좋질 못하니 적극적으로 몸이 따라주질 않는다.


4월 13일 선발대 ABC로 출발 (14일 도착)
4월 17일 본대 ABC로 출발 (18일 도착)
4월 21일 4명 대원 노스콜 진출
4월 23일 베이스캠프로 하산
4월 28일 4명 대원 ABC로 진출
5월 5일 일부 대원 ABC로 진출
5월 8일 정상공격조 노스콜 진출
5월 9일 C4 진출
5월 10일 C5 진출
5월 11일 정상 등정 (박영석, 오희준, 이형모, 셰르파 4명)
5월 12일 박영석 대장 횡단등반 성공
5월 16일 베이스캠프 철수

4월 11일
어제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바람이 몹시 요동친다.
어제 들어온 후발대에는 사실 이번 원정대의 원정대장을 맡으신 구자준 LIG 부회장, 그리고 식솔들 4명 등의 트레킹단 5명도 함께 왔다. 본부텐트 안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등반과는 별도로 어떻게 놀까를 고민하는 분들이라 좀 거리감을 느끼긴 했지만 별달리 우리들에게 불편함도 주지 않으니 상관없이 잘 지냈다.
SBS 기자로 함께 온 이강 기자가 희준형이 며칠 사용한 침낭에서 냄새가 난다고 소동을 피워 영미를 비롯해 다들 몹시 기분이 상해 있었다. 뭐 전혀 이런 경험이 없으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이해하고 나면 끝이다. 하지만 나중에 주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본 결과 기자를 비롯한 언론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경향이 좀 있다고는 한다.
바람과 눈발이 몰아치는 가운데 발전기 및 전등 설치 등등 내가 맡은 작업들을 했다. 아직까지도 머리가 아프다.

4월 13일
먼저 들어와 있던 대전팀을 만났고, 그 중 동기인 대산련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기 양유석이도 만났다. 대전팀은 이곳까지 셰르파들로 고소포터 2명, 가이드셰르파 3명, 키친보이 2명에 쿡까지 도합 네팔인을 8명이나 고용했단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것이 원정대 운영에 많은 편리함을 준다. 저희들끼리 의사소통이 수월하고 나름대로 팀워크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가이드셰르파 6명, 쿡 1명으로만 네팔인으로 하고 키친보이 2명은 현지 티베트인으로 고용했다. 그리고 이들 키친보이들을 ABC까지의 고소포터로 자주 부려먹고는 했다. 상황을 설명하니 양유석 왈, “우리팀은 안전하게 정상을 더 많이 올리는 게 최우선이니까.”
베이스캠프에는 많은 팀들이 들어와 있었고 계속 들어오는 중이었는데, 그 중 상업등반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상업등반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간단히 말하자면 1인당 많은 돈을 받고 행정에서 등반까지 거의 모든 부분을 주최측에서 준비해 주는 것이다. 많은 돈을 낸 대원은 단지 정상을 오르고자 하는 의지와 그에 적합한 체력만 있으면 이론적으로는 정상을 오를 수 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기 전 좋지 못한 소식을 들었다. 상업등반대 중 한 팀에서 너무 급히 오르려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것. 내용인즉, 먼저 캠프를 설치하기 위해 셰르파들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6400m의 ABC까지 단 4일 만에 고도를 올리는 강행군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셰르파 두 명이 실려 내려왔는데 한 명은 죽고 다른 한 명은 중태라고 했다. ABC는 장소가 협소해 먼저 올라가 좋은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상업등반대는 상황이 어찌 되었건 대원들이 가장 쾌적하고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대원들은 돈을 내고 모든 것을 주최측에 맡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업등반대를 많은 이들이 비판한다. “셰르파들을 죽여가면서 등반하는 놈들”이라며 욕하기도 한다.
이 팀은 러셀 브라이스라는 유명한 등반가가 이끄는 히말라얀 익스트림이라는 회사로, 마침 7명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나온 방송팀도 대원으로 따라붙은 팀이었다.
한편, ABC에서 노스콜 캠프3(7000m)로 오르려면 약 700m의 설벽 구간을 올라야 한다. 벽 등반이기 때문에 로프를 통해 올라야 한다. 그런데 러셀의 팀에서 가장 먼저 이 구간에 로프를 설치했고, 급기야는 우리팀에게 다음과 같은 제의가 들어왔다. 대원 당 100달러. 즉 로프를 이용하게 해 줄 테니 돈을 내라는 것이다. 당연히 우리팀은 ‘노’를 외쳤다. 그도 그런 것이, 우리도 한국에서부터 로프 및 스노우바 등의 장비를 준비해 왔을 뿐 더러, 다른 한국팀들까지 합치면 거의 서른 명에 육박하는 대 인원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돈을 쓰려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도 로프를 설치할 테니 그걸 무료로 쓰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러셀의 팀은 정상까지 전 구간, 즉 우리가 로프를 설치하지 않는 쉬운 구간까지 포함해 모든 구간을 우리의 피피로프와는 다른 진짜 등반용 로프로 설치했다. ‘정상까지, 안전하게, 더 많은 인원’이 목표인 대전팀은 돈 몇 십 만원 들어서라도 그들의 제안에 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4월 15일
어제, 오늘 원정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우선 방송팀의 ‘대접 받으려’는 자세 때문에, 워낙 그쪽을 잘 대해 주시던 영석형도 화가 나셨다. 전혀 방송팀 답지 않게 함께 일하는 용택형에게 우리 쪽에서 몇몇 사람들이 얘기를 꺼냈지만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예요”란다.
어제 저녁은 큰 사건이 있었다. ABC에 형모와 함께 선발대로 올라간 희준형이 배터리 충전액으로 준비한 황산을 마시고 내려온 것. 황산은 염산보다 강한 산으로, 마시면 즉시 식도가 타 들어간다고 대충 알고 있었다. 엊저녁 ABC로부터 무전이 온 뒤로 우리팀 베이스캠프 뿐만 아니라 모든 한국팀 캠프가 초긴장상태에 들어갔다. 특히 제주도 형들은 희준형을 끔찍이도 걱정하신다.
다행히 대전팀 윤건중 대장님께서 대전 성모병원 마취과장이셨다. 그 분께서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어제만 세 번 왔다 가시고, 오늘도 아침에 한 번 왔다 가셨다.
얼른 베이스로 내려오게끔 조치를 취하고, 약 5시간 후 베이스로 내려온 희준형에게 응급조치를 취했다. 미지근한 물을 계속 먹여 토하게 하는 게 전부이긴 하지만.
헌데 영석형은 시큰둥한 표정이다. 자칭 산전수전 다 겪은 분이긴 하지만, 역시 영석형 말이 다른 누구의 말보다 맞을 확률이 높긴 하다. 제주도 형들이나 윤 대장님의 걱정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듯하다. 하긴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희준형의 상태는 썩 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쨌든 성규형은 밤새워 잠들지 않고 희준형 옆에서 간호 하셨다. 몹시 추운 날씨에 새벽녘 링게르가 얼어 얼른 품속에 넣고 녹였단다. 그리고 형근 형은 누구보다도 멀리까지 마중 나와서 나를 찡하게 했다.
아침 식사 후, 지프가 도착했다. “야 서울로 가” 영석형의 말이 무심하게 들린다. 아무튼 희준형은 다시 카트만두로 내려가 병원에서 진찰을 받을 것이다.

4월 16일
ABC에 선발대로 올라갔던 형모에게서 무전이 날아든다.
“대장님 몸이 좀 좋질 않습니다. 밤새 토하고 지금도 좋질 않습니다.”
결국 영석형의 지시로 하산.
오후에는 고소증세로 아랫마을에 내려가 있던 해민이가 올라왔다. 그런데 아직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베이스캠프에 올라온 다음날 폐부종 증세로 장무까지 내려갔던 기순형께서는 급기야 한국으로 돌아가신다고 한다. 영석형은 어이가 없는 듯, 몹시 기분이 상하신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프다고 대장과 상의도 없이 대원들이 행동하는 것은 팀의 사기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편 카트만두로 돌아갔던 희준형은 다행히도 내시경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는 소식이다. 다들 한 시름 놓는다.

4월 20일
허영만 형님께서 ABC에서 베이스로 내려가셨다. 그런데 그저 베이스가 아니라 아예 한국으로 가신단다!
대원들이 몇 없었지만 어제는 ABC에서 셰르파들과 함께 라마제를 지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가운데 안전한 등반을 비는 기원을 정성껏 드렸다. 비록 우리들의 신은 아니지만.
이제 ABC에는 영석형 외에 허정형, 영미와 함께 있다. 영석형 마저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우리팀의 사다 셰르파는 새랍 장부다. 장부는 영석형과 함께 등반을 다니면서 네팔에서도 유명한 셰르파다. 단지 등반뿐만 아니라 등반에 관계된 중요한 자리에도 올라있다. 마치 한국의 대산련에서 부회장 정도를 역임하고 있는 정도다. 그런 장부형의 일대기, 셰르파로서의 삶을 프랑스 TV에서 내후년 정도에 약 4년에 걸쳐 다큐멘터리로 촬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3년 에베레스트 초등 50주년 때에 장부는 50여명의 대원, 스텝 포함 총 102명의 인원과 함께 남쪽에서 에베레스트를 등반했다고 한다. 다음 해인 2004년에는 이탈리아 팀 대원 70여명을 데리고 티베트쪽 루트로 공략에 나섰다고 한다. 그리고선 정상에 2시간 반 정도 머물면서 최신 위성 장비를 동원하여 정확한 고도측정을 시도했다. 이 때 측정한 결과로는 눈의 높이는 8850.7m, 바위의 높이는 8848.57m였다.
에베레스트의 고도를 둘러싼 최근의 판도를 지켜보는 것은 참 흥미 있다.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있으며 네팔 정부도 공식적으로 받아들이는 높이는 8848m. 이 높이는 1940년대에 측정된 높이로써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최고봉을 뜻하는 숫자로 곳곳에서 사용되어 왔다. 우리는 주로 전화번호 뒷자리로 많이 사용하지만. 그러나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 2003년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피사의 등반대에 의해서이다. 이들은 그 해 에베레스트 정상의 높이를 최신 기술로 새로 측정, 8850m라는 새로운 수치를 발표했다. 이 높이는 아직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생긴 히말라야 산맥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지질학적인 논리와도 부합하여 점차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대부분의 지도를 비롯해 각종 출판물, 영상물 등이 미국의 내셔널 지오그래피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거나 또는 그와 관련된 기업 등에서 발간되는데, 세계적으로 신뢰받는 이들 자료들 거의가 에베레스트의 높이를 8850m라고 표시해 왔던 것이다. 이는 단지 최근 제국주의적인 양태로 비판받는 미국에 모든 원인을 돌리는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인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정상에 쌓여 있는 눈의 높이가 이 두 수치간의 차이인 2m 정도 될 것이라는 추측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져 왔다. 결국 장부와 함께 한 이탈리아 원정대가 다음 해 밝힌 수치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한편 사회주의, 과학지상주의로 무장한 거대한 집단인 중국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중국은 1940년대 혁명이 성공한 이래 티베트를 강제 복속시키면서 세계 최고봉의 반을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 뒤 1960년 에베레스트의 북쪽 루트를 등정했다고 주장하면서 등반사에도 중요한 족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국이 2005년 에베레스트의 높이를 첨단 과학장비를 동원하여 조사한 후 새로운 높이를 발표했다. 8844m라고.
세계 최고봉의 고도를 정확히 조사해 발표하는 것은 대략 1970년대까지 어떤 국가의 원정대가 이 봉우리를 올랐느냐 만큼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다. 예전에 히말라야의 고봉을 등정하는 것이 국가 수준에서의 기술력, 경제력뿐만 아니라 대원들의 신체적 조건까지를 입증하는 수표였다면, 최근의 에베레스트 고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경합은 다시금 자국의 과학기술이 그만큼 진보했고 첨단을 달린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 주는 것이다.
어쨌든 장부는 이 같은 현실에 대해, “외국에서 어떻게 하던 네팔 정부와 네팔인들은 8848m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이들에게 에베레스트는 단순히 등반력을 시험하는 무대라거나 아니면 첨단을 달리는 과학력을 이용하여 자국의 위상을 드높이려는 수단이 아니다. 이들에게 에베레스트는 물을 흘려보내 농작물을 경작하게 하거나 때로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는 힘을 가진 신비스런 자연의 신이다. 혹은 적어도 지구 꼭대기에 사는 종족이라는 자긍심을 주는 자연물인 것이다.

4월 21일
열댓명의 대원들이 덤벼도 등정자는 훨씬 적다. 더구나 등정자가 반드시 가장 열심히 원정을 준비했거나 고생을 많이 했거나 체력적으로 가장 뛰어난 대원인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든 뒤에 남아있는 사람은 배가 아플 수 있다. 이렇게 배가 아프지 않기 위한 좋은 약으로, 모든 대원들이 기계 부속처럼 각자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만족하게끔 하는 설정이 있다. 즉 한 두 명의 등정자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원정대 전체의 성공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 우리나라의 특출한 집단주의적 경향이 없다면 절대로 불가능한 설정일 것이다.
노스콜에 올랐다. 눈보라가 몰아쳐 손이 몹시 시렸다. ABC를 영석형, 허정형, 영미 등 네 명이 출발했으나 영미는 노스콜 설벽을 1/3 가량 오른 후 후퇴, 남은 셋 만 캠프3로 향한다. ABC를 출발해 약 1시간 전진하면 모레인 지대가 끝나고 빙하가 시작되는 널찍한 플라토로 올라서야 한다. 장비를 착용하고 전진, 저 멀리 올려다보이던 노스콜 설벽에 도착해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 이래봐야 별 건 없다. 30~70도 가량 되는 경사면에 고정로프가 두세 개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 유마를 연결하고 계속 오르기만 하면 된다. 그저 힘들고 숨이 차기만 할 뿐, 끊임없이 전진하기만 하면 된다. 설벽을 차고 오른 지 5시간? 결국 노스콜 정상인 7030m 캠프3에 도착해 몸을 누인다. 여기까지 올라온 팀이 몇 안 된다.
고소증세는 별로 느끼진 못 하겠지만 확실히 움직이기가 힘들다. 캠프에서 알파미 비빔밥으로 음식을 만들었으나 형들은 거의 먹질 못하신다. 립톤 주스를 타서 마시니 달콤하고 잘 넘어 가기에 실컷 마셨다.
한편 베이스와 무전 교신을 하던 중 영석형께서 화를 내신다. 이유인즉슨 비록 팀은 다르나 행정에서부터 등반의 중복되는 모든 내용들을 함께 하게 된 다른 한국팀들 중 제주설암팀의 대장인 창백형과 마찰이 있었던 것. 캠프4에 짐을 올릴 셰르파들의 운용에 대해서 서로 오해가 있어 입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베이스로 내려가신 영만형님께서 계속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으셔서 결국 영석형은 내일 다시 ABC로, 모레에는 베이스로 내려가기로 하셨다.

4월 22일
노스콜 정상 주변에서 경치를 감상하다가 캠프3에 남아있는 장비며 식량 등을 체크한 뒤 곧 ABC로 내려왔다. 셰르파들은 캠프4와 캠프5에 각각 짐을 올리러 출발했다.

4월 23일
다시 베이스로 내려온다. 며칠 더 있어도 괜찮겠건만.
에베레스트 등반은 어떤 점이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어필할까? 결국 세계 최고봉이라는 지위 밖에 다른 것은 없다. 등반가들 중 여기에 실망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그리고 상업등반대가 대부분인 현재의 등반 양식에도 많은 이들이 에베레스트의 ‘등반’에 대해 실망한다.
에베레스트는 물론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현대의 알피니즘은 에베레스트를 이젠 등산가의 최후의 목표라고는 부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으로 어필하는 것은 그것이 세계 최고봉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4월 24일
베이스의 텐트 안에 용택형과 나란히 누웠다.
옆 상업등반대 러셀 브라이스 팀의 디젤 발전기의 요란한 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고 있다. 누군가 지난 밤 새 이 발전기의 배터리를 훔쳐간 사실을 오늘 아침에 발견했다. 결국 여기에서 전기를 빌려다 쓰고 있는 우리팀에서 우리의 메인 배터리를 빌려줬다. 결국 우리팀은 어두운 밤에 전등을 켜려면 발전기를 꼭 돌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 줄잡아 200여명이 넘는 인원이 모여들어 현지인들과 함께 작지 않은 마을을 이루고 있다. 롱북 빙하가 끝나는 지점, 널찍하고 황량한 벌판에 여기 저기 베이스캠프를 설치해 놓은 각국에서 온 약 스무 개의 팀들이 모여 있다. 그러나 이들 간에 왕래는 사실 거의 없다. 아쉽긴 하지만, ABC에 오르는 길목에서, 혹은 노스콜에서 서로 마주치며 나누는 짧은 대화, 눈인사들이 무언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거기에 등반과 관련된 자잘한 문제들-예를 들어 고정로프 사용문제, 캠프사이트 문제 등-뿐만 아니라 우리팀과 같은 전기 문제, 위급한 환자의 처치 문제, 야크 사용 문제 등등 여러 제반 사항들이 서로를 연결시켜 준다.
팀 내에서는 즐거운 분위기가 지속된다.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것은 히말라야의 높은 봉우리들 사이를 걷는 행위뿐만이 아니다. 티베탄들과 셰르파, 네팔리들이 뒤섞인 사이에서 이런 저런 작업을 함께 하며, 현지인들과 주고받는 농이 섞인 대화, 그리고 우리 대원들 사이에 오래도록 주고받는 대화들. 한국에서는 좀처럼 겪지 못하는 우리가 잠이 잃어버리고 있었던 그 무엇들이다.
노스콜에 오르던 며칠 전부터 탈진한 영미가 아직껏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급기야 오늘 저녁에는 산소를 마시고, 마사지를 받고, 찜질까지 받고 있다. 머리가 아프단다.
제주설암팀의 종엽형도 오늘 낮에 갑자기 쓰러졌다. 우리팀에서는 산소를 빌려주는 것 밖에 달리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 몸에 반신마비가 온단다.
‘툭 하면 쓰러지고, 툭 하면 환자발생’
연수형의 표현이다.
26일에는 희준형이 카트만두에서 다시 베이스로 복귀하는 날이다. 그리고 29일 ABC로 다시 출발할 계획이다.
인말새트(위성인터넷장치)가 고장으로 작동이 안 된다. ABC에 올라가 있던 20~23일의 일지를 밀렸다. 인터넷중계를 그동안 해 왔는데, 응원일지를 보는 순간, 내 책임을 다 하지 못한다는 것이 크나큰 잘못임을 깨달았다. 우리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그야말로 ‘목마른 심정으로’ 원정 일기를 애타게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4월 25일
등산가의 윤리란 전인(全人)적인 윤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결코 등반력 따위로 순위를 매겨서도, 전인적인 윤리를 그르치는 어떤 가치도 추종해서도 안 됨이다. 그리고 에베레스트의 등정이 그러한 등반력과도 깊은 관계에 있지 않다면 이때의 등정이란 결코 등산의 최후의 목표가 되어선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나 자신 지금 EV를 몹시도 오르고 싶은 것은 왜인가. 지금과 같은 부조리한 상황-에베레스트 등반이 변질된 상황-아래에서조차 ‘언제나 거기 그대로 있는 산’을 오르는 행위 자체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 있다. 산을 오르고자 하는 열망은 등산가의 모든 행위의 근본이되 ‘사람’이 산을 오른다는 형식을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자는 사람이며 사람은 사람답게 올라야 한다. 즉 등산가의 윤리란 전인적인 윤리를 말한다는 것이다.

4월 28일
26일에는 카트만두까지 가 있던 희준형이 결국엔 다시 돌아왔다. 영만형과 함께 장무까지 내려 간 영석형은 영만형님을 한국으로 전송하고 희준형과 함께 돌아오셨다.
베이스에 있으면 자잘한 희비가 교차하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쿡인 두르바와 함께 키친텐트에서 아예 사는 인물이 있다. 바로 허정형이다. 형은 음식 솜씨가 유달리 뛰어나 각종 푸짐한 요리로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해 준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베이스로 내려와 있는 이 때, 동기인 형모 혼자 ABC와 캠프3를 왕복하며 위에 올라가 있다. 이날은 캠프4까지 짐 수송을 도왔다고 한다.
27일은 결국 형모가 내려왔다. 항상 바라클라바를 하고 있어서인지 얼굴이 재미있게 탔다.
28일은 희준형와 용묵형, 영미, 일삼이 등 4명의 대원이 ABC로 출발, C1까지 운행했다.


4월 29일
영석형의 지시로 나와 해민이가 베이스캠프에서 저 멀리 올려다 보이는 창체 앞의 봉우리로 정찰을 다녀왔다. 여기에 가게 된 이유는 참 우여곡절이 많다. 짧게 설명하자면, 우리팀은 난치병 어린이 25명의 소원을 담은 기를 에베레스트 정상에 묻고 온다는 SBS의 「희망TV」 24의 기획을 따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날짜는 정확히 5월 5일이 되어야 하며, 그 날 SBS에서 24시간 동안 생중계하는 프로그램 중에 포함되어 있기에 5월 5일 정상에 올라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히말라야에서 등정 날짜를 미리 정해 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인가는 웬만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의 등반은 날씨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재 캠프5까지 거의 대부분의 장비 운송과 캠프 구축이 마무리 된 상태로, 날씨만 받쳐 준다면 정상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날씨가 좋지 않다는 예보가 계속되고 있는 것. 특히 5일 즈음에는 7000미터 이상에서의 풍속이 초속 20m를 넘는 강풍이 예상되고 있다. 결국 우리는 일종의 가짜 등반을 계획했다. 즉 좀 낮은 봉우리에 오르는 장면을 에베레스트의 정상 공격을 나서는 것으로 한국으로 송출하고, 결국 이날 등반에는 실패하게 된다는 작전이다. 어쨌든 나와 해민이는 모의 등반 시 구축할 텐트사이트를 미리 확인하러 정찰을 나간 것이다.
여기에는 대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오고 갔다. 하지만 결국 시도하게 된 것은 ‘정상이 아닌 곳을 정상이라고 거짓말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등반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는가’라는 영석형의 주장이 가장 컸다.
한편 형모는 석유통을 들다가 허리를 삐끗해 여기 모의 등반에서 제외되었다. 잘 때는 찜질팩을 하고 압박붕대로 복대를 만들어 차고 다니기도 한다.
해민이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04학번인 어린 나이에 좋은 경험을 하며, 여기에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아이다.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자 하는 마음은 나도 그야말로 굴뚝같다. 세계 최고봉을 오르고자 하는 이유는? 이를 낱낱이 밝히기 꺼려질 정도로, 프로이트의 말처럼 무의식적으로 무의식 속에 감춰놓은 상태다. 아무튼 이를 누구는 ‘왕자적 명상’이라고 표현하며, 혹은 낭만주의적인 취향이라고도 일컬을 수도 있다. 또는 순진하게 알피니즘의 발로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도전’, ‘탐험’, ‘알피니즘’과 같은 특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행위들은 때로 몹시 의심스럽기만 하다. 특히 에베레스트가 갖는 지위를 생각할 때 이 의심은 더더욱 짙어진다.
결국 알피니즘의 실현이란 일반적인 원정과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5월 4일
‘희망봉’ 등반 작전 전격 취소!
날씨 및 텐트사이트 등 복합적인 이유로 그 따위 등반은 안 하기로 영석형께서 결정했다. 오늘 베이스캠프로 전원 내려간다.
역시 해 보다가도 안 되면 내려올 곳은 희망봉이 아니라 노스콜, 세컨드 스텝 등인 것이다.
정상 공격 날짜는 10일로 변경되었다.
생중계의 계획도 대폭 수정되었다. 내일 생중계는 그저 베이스에서 하고, 우리의 정상공격 날짜는 10일로 잡혔다. TV에 출연하는 것은 안 출연하는 것 보다는 좋다. 이런 노래도 있잖은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하지만 등반가 이외의 스텝들에게 알게 모르게 시달림 당하는 것은 점점 참기 힘들다.
내일 형모와 정형, 해민과 내가 출발한다. 캠프1을 들르지 않고 한 번에 ABC까지 간다. 여기에 정상 공격 대원까지 정해졌다. 영석형, 정형, 희준형, 영미와 형모 그리고 나 이렇게 6명이다.
날씨 정보가 그간 어찌되었건, 밤하늘에 올려다 보이는 저 하얀 봉우리는 여전히 고요하기만 하다.

5월 5일
이제 정말로 정상을 오르기 위해 오르는 것이요, 결코 도중에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다.

5월 7일
그제 ABC에 도착한 이후 어제와 오늘 휴식을 취했다. 내일 드디어 출격이다. 정상 공격 대원 6명에 해민이와 용택형도 중간까지 따라온다.
기록을 작년 트랑고 등반 때의 반 정도 밖에 안 하는 것 같다. 그만큼 자만에 빠졌다는 뜻일까. 아니면 익숙해져 쓸 필요가 없게 된 것일까.
이상하게 컨디션이 별로 좋질 않다. 그리고 계속되는 기침! 이 사람 저 사람 돌아가며, 때론 합창으로 계속 콜록거린다. 정형은 밥도 제대로 못 먹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다. 아마도 노스콜을 오르기는 힘들 것이다.
낮에 캠프5와 정상에서의 생중계를 위한 촬영장비 테스트 및 작동법을 용택형으로부터 희준형, 정형, 내가 배우고 있을 때, 영석형의 말씀.
“나 못 올라가면 너희들끼리 만이라도 해야 돼!”
물론 그런 일이 절대로 없어야 한다. 영석형은 우리팀의 대장이자 정신적 지주다. 그런 영석형마저 ABC에 올라온 뒤로 몸살감기증세를 보이신다.
내일은 8일 어버이날이다. 영석형께서 “다들 부모님께 전화 한 통씩 해”하시며 이리듐 위성전화기를 돌린다. 형모와 영미, 일삼이, 해민이 모두 집에 통화를 하고 나도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는 목이 잔뜩 쉬어서 크게 소리를 질러가며 통화해야 했다. 주무시다 깬 듯 한 어머니와 몇 마디 나누고 아버지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부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실 텐데.
영미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종일 텐트 안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그래도 정상을 등정하기 위해 내일 출발한다. 영미는 이번 원정이 그에게 무척 중요하다. 왜냐하면 에베레스트가 지금 반 정도 진행된 7대륙 최고봉 등정의 가장 큰 관문이기 때문이다.
도무지 고소에 적응이 안 되는 일삼이는 ABC를 커버한다. 말이 커버지 더 못 올라가고 ABC에 남는 것이다. “본인은 얼마나 가고 싶겠어” 고소에 쥐약인 일삼이를 놀리면서도 때로 측은해 하는 이들의 말이다. 하지만 일삼이가 얼마나 오르고자 하는 욕구가 있는지, 그리고 그 욕구란 무엇으로 인해 생긴 것인지 나는 도무지 확신할 수가 없다. 사실 우리 대원들 모두에게 이 점은 궁금하다. 등반 혹은 등정에의 욕구, 동기란 무척 다양할 수 있다.
내일을 기다리다 지쳐 종일 두 권의 책을 후딱 읽어 치웠다. ‘마시멜로 이야기’, ‘젊은 알피니스트의 마음’ 두 권이다. 두 권 모두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껄끄러웠다. 일기장에 실컷 이 책들을 반박하는 내 나름의 주장을 주절주절 적어 보았다.
이번 에베레스트 등반을 위해 나는 무엇을 얼마나 준비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그 점이 부족한가는 이번 등반 자체가 나에게 교훈을 줄 것이다. 어떤 등반이 되든지 이번 등반은 나에게 반성하는 기회, 일보 겸손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5월 8일
노스콜 캠프3에 도착했다. 무척 힘들다!
기상정보를 받기 위해 노트북과 인말샡을 여기까지 지고 올라왔다. 셰르파에게 맡길 것을! 그러나 셰르파들도 모두 생중계 장비 등등을 지고 있어 차마 그러지 못했다.
정형은 역시 ABC를 출발한 지 한 시간여 만에 영석형의 지시로 다시 돌아갔다. 형이 너무 힘들어 한다.

5월 9일
7700m 캠프4다.
해민이는 7400m 정도까지 오르다가 캠프3로 다시 내려갔다. 그의 임무는 그곳에 남아 캠프를 커버하는 것. 그의 어머니도 연세대 산악부 출신으로, 십여 년 전에 영석형과 함께 이곳 캠프3에 오르셨다고 한다. 기막힌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매일 받는 응원일지에는 해민이 어머니의 응원글도 자주 올라왔는데, 이번에는 해민이더러 노스콜에 감춰놓은 ‘무엇’을 찾아오라고 그러셨다. 그게 무얼까? 나도 궁금하다.
어쨌든 느지막이 도착한 캠프4. 무척 피곤하고 힘들다. 보통 이곳까지 한두 번 왕복하여 고소에 충분히 적응된 후 정상 등정을 시도하는데, 나는 노스콜에 한 번 오른 것이 전부다. 내심 불안하다.
캠프4는 캠프3에서 빤히 올려다 보여 가까워 보이지만 역시나 히말라야 고산이 다들 그렇듯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설벽을 약 네 시간 가량 유마링으로 오르는 데 해가 몹시도 뜨겁다. 도저히 참기 힘들어 우모 원피스를 벗어 내복 차림으로 배낭에 달고 오르다가, 해질 무렵 되니 눈보라가 몰아치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얼른 우모복을 입고 다시 올랐다.

5월 10일
8300m 캠프5에 올랐다.
캠프4에서 캠프5 까지는 바위지대로, 역시 계속해서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어떤 곳은 로프가 전혀 필요 없지만 구간 구간 가파르고 어려운 곳이 있어 유마를 사용한다. 낮엔 날씨가 좋다가도 오후가 될수록 강풍에 눈보라가 몰아친다. 정상에 오르기에는 그리 썩 좋은 날씨는 아닌 듯하다.
캠프5에 너무 늦은 시각에 도착했다. 내일 등정을 위해 오늘은 얼마 휴식을 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캠프5는 가파른 바위지대에 바깥쪽에 돌을 쌓아 텐트사이트를 만들어 설치되어 있다. 텐트 한 동에 5명의 대원이 모두 들어가 그저 침낭 두세 개를 함께 덮고 앉아서 쉬는 것이 전부다. 물을 만들고 차를 끓여 마시다가 ‘잠시 쉰 후’ 12시에 출발이다.
17시경 도착했는데 얼른 텐트 속에서 마실 것 등을 마시고 내일 등반 준비를 간단히 한 후, 대충 쪼그리고 누워 약 한 시간가량 눈을 붙인다. 잘 때에는 산소를 조금씩 마시면서 잔다.

5월 11일
정말로 잠깐 잤다. 희준형의 깨우는 소리가 야속하다. 그래도 가야한다.
산소마스크가 답답해 떼고 잤었나 보다. 실수한 것 같다. 어제부터 머리가 멍 해 지금 내 몸의 상태가 어떤지 잘 모르겠다. 안 좋은 것은 확실하다.
22시. 준비하는 데 두세 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물을 끓이고 그동안 애용했던 파시코를 수통에 타서 담았다. 파시코는 주로 헬스 선수들이 먹는 물에 타 마시는 것으로, 높은 열량을 갖고 있다. 미숫가루와 주스의 중간 정도 맛이 난다.
차를 끓인다. 이걸 먹고 정상을 갔다 오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정신이 없어 보인다. 오늘 종일 무척 피곤하겠지.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에 출발.
출발하는 장면을 캠코더에 담느라 내가 제일 늦게 출발하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내 뒤 저 아래 반짝이는 랜턴 불빛으로 존재를 알려주고 있는 영미가 있다. 그리고 8300m 가공할 고도에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품고 오르는 지도 모르면서 계속 같은 오름짓을 반복하고 있는 나.
“왜 오르는 것일까.”
“정상은 갔다 와야지.”
“어떻게 하면 더 쉽게 혹은 더 어렵게”
뭐 어떤 생각이든 다 필요 없다. 이 상태라면 정상이라 해도 별달리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
정상능선에 오르기까지는 급경사의 바위면을 올라야 한다. 한참을 오르는 데 언제부터인가 저 아래에서 보이던 불빛이 없어졌다. 장부 셰르파, 영석형이 몇 차례 영미에게 도중 힘들면 돌아가라고 충고했던 것이 기억난다.
정상능선에 오르자 칼날 능선이다. 서서히 동이 트면서 바람이 몹시 분다. 다행히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다. 한참을 오르다가 산소통을 갈아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두 통의 산소를 지고 오르는데 사용하던 한 통은 보통 세컨드스텝 밑에 놓고 그곳에서부터 새 통을 사용하고 정상을 왕복한 후, 다시 데포시켜 놓은 산소를 메고 내려오곤 한다. 왜인지 세컨드스텝에 다다르지도 않았는데 산소를 갈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소를 갈다 보니 옆에 어떤 사람이 엎어져 있는 게 보인다. 눈이 얼굴과 상체를 덮고 있어 그가 잠시 엎드려 쉬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누워 있는지 적어도 수년은 된 사람이란 것을 짐작케 한다. 별로 이상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단지 그의 아이젠이 흔히 볼 수 있는 빨간 빨래판이며 신발은 형광색 코플라치라는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 뿐.
산소를 교체했는데 산소가 나오질 않는다. 게이지 바늘이 0에서 움직이질 않는다.
‘…빈 통을 가져왔던 것일까?’
왜 산소가 들어있는지의 여부를 캠프5를 출발할 때 확인해 보지 않았을까? 하긴 대원들 누구도 그런 것은 확인하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이지? 다시 사용했던 산소통으로 바꿔 단다.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친다. 이제 큰일이다. 멍한 정신을 집중시키려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대로 올라가면? 먼저 간 이들을 따라잡기란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산소를 달랄 수도 없다.’
‘여기 저기 널려있는 산소통 중에 산소가 남아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아니, 여기 누워있는 사람의 산소통엔 산소가 남아 있을지도 몰라. 미안하지만 빌려 쓰자.’
그의 산소통에 레귤레이터를 연결해 보았다. 그러나 역시 게이지는 0을 가리킨다. 산소가 남아있는 사람이 이곳에서 얼어 죽을 리가 없는 것은 당연한 사실인 것이다.
내려가야 한다는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다. 아쉽지만 돌아서야 한다. 발걸음은 벌써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가고 있다. 운이 나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게 내 부주의로 인한 잘못이다. 준비성 없고 철저하지 못한 등반가에게 되돌아오는 부메랑이다.
문제는 무엇인가? 항상 나는 준비가 없고 대충 감으로 해 왔다. 나도 정상을 가고 싶다. 정상에 대해 수없이 많은 상상을 했다. 하지만 산악인의 가장 큰 적은 「귀차니즘」이요, 정확하고 꼼꼼한 것이 산악인의 미덕이라고 일컬어 왔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던 것이다.
내려오기 시작한 지 10분 정도 지나 그나마 물고 있던 산소통의 산소도 바닥났다. 이제 무산소다. 가만히 서 있어도 숨이 골라 지지 않는다. 한시 바삐 내려가야 한다. 저 아래 캠프가 내려다보이는 데 정신은 가물가물 해 진다. 다리가 제멋대로 춤을 춘다. 아이젠 한 짝이 벗겨졌으나 오히려 미끄러져 내려오는 게 더 빠르고 힘이 적게 든다. 저만치 보이는 노란 텐트가 도저히 가까워지는 것 같지가 않다. 내려가야 하는데….
산소 부족으로 인해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텐트에 들어섰다. 역시 영미가 누워있다. 쓰러지듯 옆에 누웠다. 놀란 영미가 뭐라고 물었으나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영미가 자신의 산소를 나에게 물려준다.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세 시간 정도 잤을까? 라마 깐차 셰르파가 갑자기 텐트로 들어섰다. 자신도 오르다가 레귤레이터 고장으로 도중에 내려왔다고 한다. 이런 일이 한 팀에서 두 명에게 발생했다니 그리 드문 경우는 아닌 것 같다. 깐차가 우리더러 얼른 아래로 내려가라고 한다. 확실히 이 고도에서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정상에 오른 다른 대원들이 내려오면 텐트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도 그랬다.
도저히 꼼짝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억지로 발걸음을 뗀다. 내려가는 걸음조차 한 걸음 떼기 힘들다. 보통 하산할 때에는 두세 캠프를 한 번에 내려오곤 하는데, 캠프4에 도착하니 해가 지평선 아래로 숨어버린다. 어쩔 수 없이 캠프4에 들어가 몸을 누인다.

5월 12일
“영훈이형 괜찮아요?”
자면서도 몇 번이나 영미가 물어본다. 한참을 끙끙 거리더니 쥐죽은 듯 조용해 죽은 것 같단다. 다리를 나에게 올려서 조금이라도 나를 따뜻하게 해 주려 한다. ‘나중에 고맙다고 말 해야지’
아침이 되었는데 일어날 수가 없다. 영미가 텐트를 뒤져 버너와 코펠 등을 찾아냈다. 겨우 물을 만들어 마신다. 도무지 내려갈 엄두가 안 나는데, 등정하고 내려와 캠프5에서 자고 온 희준형이 텐트에 불쑥 고개를 들이민다. “여기 있었구나! 너희들 꼭 오늘 내로 ABC까지 내려와라.” 형의 얼굴이 몹시 초췌하다. 그야말로 반쪽이다.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캠프4를 나섰다. 오늘 내로 ABC까지는 갈 수 있겠지…. 그러나 어제보다 상태가 전혀 호전된 것 같지 않다. 노스콜 캠프3에 도착할 때쯤은 도저히 다리에 힘이 빠져 한 걸음도 내딛을 수 없을 정도였다.
등정하고 온 형모가 우리를 계속 돌봐준다. 음식도 제대로 해 줘 겨우 몇 숟갈 뜰 수 있었다.

5월 13일
좀 내려오니 살 것 같다. 음식이 넘어간다.
ABC로 천천히 내려왔다. 몸이 좀 괜찮아지니 차차 정신도 들기 시작한다. 다만 복잡한 생각하기가 도저히 어렵다. 뇌가 힘들어하는 듯싶다.
횡단을 시도했던 영석형과 장부는 무사히 네팔 쪽 루트로 내려가 캠프2에 안착했다는 소식이다.

5월 14일
바로 철수다. 내일 야크가 올라오기 때문에 오늘은 짐을 포장했다.
그새 몸이 무척 야위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놀란다. 그리고 얼굴에 상처가 있는데 어디서 생겼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캠프5로 정신없이 내려올 때 어딘가에 부딪혔나 보다.
이젠 차차 나의 등정실패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봐야겠다. 그러려면 우선 왜 오르려 했는지부터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이다.

5월 15일
베이스로 내려왔다. 많은 이들이 우릴 반겨주고, 축하의 말, 위로의 말 등 이런 저런 얘기를 해 준다.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빈 종이에 새로 글을 써 내려가듯 내 머릿속에 가슴 속에 채워지는 것 같다.
체중이 단숨에 십여 킬로그램은 빠진 듯하다. 온몸에 힘이 없다. 이후로 며칠 동안은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축 처져만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느낌이다.
본격적인 원정등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이번 원정은 추억이 담긴 글과 사진 속, 그리고 내 가슴 속에서나 남아있을 것이다. 미련 없이 돌아서는 일만 남아있을 뿐. 그리고 이제는 슬슬 또 다른 원정등반을 떠나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가 언제나 하나의 원정이 아니었던가.

이름아이콘 '78김성수
2006-06-12 09:31
 등반기 잘 읽었다. 그리고 아쉬움도 남겠지만 무사히 돌아 온 것이 너무 기쁘다. 5월 11일 산소통이 문제가 되었을 때 옆에 죽어 있던 사람이 영훈이의 판단을 도와서 살아오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대장과 등반대와의 교신이 안되어서 단독으로 하산을 결정한 것에 대해 누구도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모든 조직에는 권한을 위임 받은  결정권이 있어야 하니까. 잠간 살아가는 인생,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엊그제 홈컴잉 데이에서 그랬듯이 반가운 얼굴을 다시 대하고 술 한잔 더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냐. 마지막 네 말대로  다른 원정은 또 떠나면 되는 것이니까. ^^
   
이름아이콘 안상원
2006-06-12 09:57
 네 글을 잘 읽었다.
읽어 가면서 내가  젊었을 땐 즐겨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운명의 여신들은 끊임없이 내곁을 지나가며 기회를 주려한다.  그러나 나는 그 누구의 옷자락도 제대로 꽉  잡지 못한다.
아직도 나는  제대로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이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문을 열어 줄 것이다.  젊음은 준비할 수 있는 시간, 힘, 그리고 기회을 준다.
그 젊은 시절에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이 준비되어 있는 자들은 멋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본다.  

기회는 계속 우리에게 다가 온다.  이번 등반을 되삭여 가며   필요한 준비와 마음 가짐을 다시 해 가면서
영훈이와 우리 후배들이 멋있게 즐기는 등반의 기쁨을 산과 인생에서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이름아이콘 박학수
2006-06-13 11:50
 영훈아, 잘 읽었다. 고생했다. 그리고, 무사히 귀환해서 정말 다행이다. 젊고 패기만만한 너에게 다시 도전할 기회는 많지 않겠니?  너는 이번 등반으로 레벨이 3-4단계 오른거야!! 힘내자구...짬내서 분당 한 번 들려다오. 보고잡다...
   
이름아이콘 진교춘
2006-06-13 14:20
 오영훙! 수고많이하고 무사히 돌아온것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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