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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계획
작성자 류호정
작성일 2004/08/25 (수)
분 류 OM 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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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산성 및 유적 탐방기


                                                         고구려 산성 및 유적 탐방기

  1. 일정 : '04. 8. 2 - 8. 9(7박 8일)

  2. 장소 : 인천 - 심양 - 본계 - 단동 - 환인 - 집안 - 통화 - 이도백화 - 백두산 -연길 - 용정 -
             도문 - 연길 - 인천

  3. 참가자(9명) : 진교춘( 와이드테크 사장/협회 이사), 이대희( 광운대교수/협회 부회장),
                       류호정(협회 사무국장), 배영하(심곡서원 회장), 이명화(관세청/행정학박사),
                       이시철(경북대교수), 전봉주(중학교 영어교사/이대희 부인),
                       이영미(중학교 음악교사/류호정 부인), 류수환(중학생/류호정 아들)

  4. 고구려 문화탐방 후기 ( 잃어버린 왕국을 찾아서 )

   8월 2일(월)

    -   인천국제공항에서 요녕성 심양시로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는 KE 831편을 타기 위해 3층 출국장에
      7시 30분 정각에 모두 모였다. 참가자들이 서로가 초면인지라 상호 명함을 교환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즐겁고 유익한 문화탐방이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번 방문일정을 알선한 골드투어
      유정건 이사의  여행에 대한 설명 및 주의사항을 듣고 곧바로 비행기에 탑승 할 수 있었다.
      여름방학인지라 공항이 분벼서 가까스로 수속을 마치고 오를 수 있었다.  

   -   심양공항에 11시에 도착하여 북경가이드인 김춘옥씨를 만나 전용버스를 타고
      40분정도 달리니 시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심양시는 요녕성의 수도로 옛날에
      봉천으로  불렸으며 동북3성 가운데 가장 큰도시로 인구는 약 670만명이며 청나라 건국의 아버지인  
      누루하치(1559-1626년)가 청조의 전신인 후금의 수도를  심양으로 천도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게 되었다.  시내 곳곳에는 만주제국의 유물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고 한다.  

   -   시내에 도착한 일행은 중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가이드 2명도 소개를 마치고 12시 40분에 식당을 출발하여 고궁으로 출발하였다.
      식당의 음식은 8가지 요리가 나오는데 우리 입맛에 어느정도 맞고 음식양도 상당히 되었다.

   -   심양고궁은 중국에서 북경고궁(자금성) 다음으로 규모가 크고 완전하게 보존된
      근대이전의 궁전으로 찬란하고 기세 웅장하다. 청태조 누루하치와 제2대 태종 때의 황궁으로
     1625년에 짓기 시작하여 1636년에 완공되었다. 총면적 약 2만평으로 90여개의 건물에 300여칸에
      이르는 웅장하고 화려한 궁전이다.    

   -    내부는 동,중,서로 크게 나뉘고 출구는 남쪽에 있다. 동로는 고궁을 대표하는 대정전이 있어
      황제가 신하들과 정무를 보던 곳이다. 중로는 숭전전, 청령궁 등의 주요궁전이 있다.
      숭전전은 특별한 의식이나 황제를 알현하는 장소이며, 봉황루는 연회가 있을때 사용되며, 서로는
      황제의 도서관과 무대가 있고 후일 건륭제가 증축한 문소각이 있다.  

   -   고궁 방문을 마치고 북릉공원으로 향했다. 북릉은 청나라 제2대 태종과 왕후가 뭍힌 곳으로
     시가지 북쪽에 위치한다고 해서 북릉이라고 부른다.                                    
     북릉은 1643년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1651년에 완성하였다. 그후 강희제, 건륭제 등에 의해
     보수작업이 종종 이루어 졌다. 神道(신이 다니는 길) 양쪽 길가에는 하늘을 향해 포요하는 사자,
     기린.  말 등 다양한 石獸가 대칭을 이루며 늘어서 있다. 석수중에서도 石馬가 가장 유명한데,
     이말은 태종이 천하를 손에 넣을때 활약했다는 전설이 있다.
     현재는 능묘 일대가 공원으로 지정 되었으며, 면적은 100만평이나 되며, 공원내에는 인공호와
     유원지가 있고 태조와 태종의 활약을 소개한 대청흥적궁 등이 있다.

   -  북릉 견학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서 서탑거리(조선족 밀집지역)를 들러서 잠시 우리나라 말로 쓰여진
     수없는 간판을 보면서 새삼 한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  저녁 식사는 코리아나불고기집에서 불고기와 냉면으로 맛있게하고 호텔로 향하여 첫날의 일정을
     마쳤다.


  8월 3일(화)

   -   어제 투숙한 글로리아 호텔에서 조식을 풍성하게 마치고 7시 30분에 심양 남쪽에 위치한 본계로
     출발하였다.  약 2시간 전용버스로 달려  본계 수동동굴에 도착하였으며, 수동동굴은
     석회암 종유동으로 400-500만년전에 형성되었다.    종유동의 전장은 약 3,000미터, 면적은
    1만평으로  종유동안에는 1일 1만4천톤의 지하수가 흐르고 있으며, 종유동안의 수심은
    평균 2미터 가장 깊은 곳은 7미터나  되며, 수면이 대단히 넗어 배를 타고 유람할 수 있다.
    우리 일행도 외투를 빌려 입고 유람선을 타고 약 30분에 걸쳐 석회암동굴을 구경하였는데
    그야말로  fantastic이었다.

   -   수동동굴 방문을 마치고 근처에 있는 취선루라는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12시에 출발하여
     압록강변에 있는 단동시로 향했다.

   -   단동시에는 오후 4시에 도착하였는데 비가 계속 내려 일정을 일부 변경하여 호산산성은 내일로
     미루고, 압록강공원을 보기로 하였다.

   -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흐르는 鴨綠江은 장백산(백두산)의 남쪽 기슭에서 시작하여 황해로 흘러
     들어가는 802키로미터의 하천. 물이 오리의 머리와 같은 녹색이기 때문에 宋.遠代에 압록강으로
    고쳐 불렀다. 현재는 그 하류 지역은 경치가 뛰어난 명승지구로 지정되었으며, 100곳이 넘는 관광지가
    흩어져 있다. 이 압록강 하반에 있는 것이 압록강 공원. 이곳은 1976년에 완성된 전형적인 중국정원
    형식을 갖춘 공원으로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압록강대교 등을 바라볼 수 있다. 또 압록강
    하반에서는   많은 유람선이 출발하는데 우리 탐방단도 유람선을 타고 (압록강/두만강은 국경선이
    없음)  둘러 보는데 중국과 북한은 건물 및 배들이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달라 보인다.

   -   압록강대교는 중국의 단동시와 북한의 신의주시를 연결하는 12개의 교각을 지닌 다리로,
     전장은 946미터. 다리는 상류쪽이 차량.대인용, 하류쪽이 철도 전용이다.일제시대인 1931년에
     건설하기 시작하여 1943년에 완성했지만, 6.25전쟁 당시 미군의 공격을 받아 원래 2개였던 다리가운데
     하나는 파괴되어 일부분이 남아 있는데 그때의 전쟁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다.
     파괴된 다리를 통하여 약 200미터 걸어서 철교의 상흔을 바라보며, 저멀리 북한땅을 쳐다보는
     일행의  모습이 웬지 서글프고 가슴 져며온다.

   -   압록강대교를 둘러보고 저녁식사를 마치고 일부 일행은 호텔내에서 사우나와 발마사지를 하여
     여독을 풀고 취침하다.


   8월 4일(수)

   -   어제 우천관계로  오늘로 미루었던 호산장성을 보기위해 아침일찍 6시에 식사를 마치고 7시에
     호텔을 출발하였다. 단동시에서 북쪽으로 새로 만든 길을 통해 압록강 줄기를 따라 풍경을 즐기며    
     달리다 보면 호랑이 형상을 닮았다고 하는 虎山이 나타난다.
     해발 300미터에 불과하지만 산세가 호랑이 머리처럼 제법 웅장하다, 虎山長城은 만리장성의
     동쪽 출발점으로 호산에 있는 긴 성이라는 뜻이다.

   -   호산의 산세를 망치지 않도록 장성이 건설되었으며 폭은 약 6미터, 담장 높이는 사람 키를
     넘는다, 90년도에 중국이 장성을 복원 하면서 고구려산성을 확인, 호산남쪽아래 장성의 기점이 되는
     36미터의 판축토대가 나왔는데 그 아래층에서 고구려의 석축 성벽과 우물터가 발견되었다.
     또 호산정상을 통과하는 장성의 장대받침은 고구려 산성의 성벽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처럼 고구려 유적임이 분명할진대 중국은 왜 자기역사라 지금와서 주장하는 것인가 !

  -   호산장성을 약 40분 둘러본 뒤 8시20분경 다음 목적지인 환인시로 출발하였다,
    환인시까지는 약 5시간 걸린다고 하여 버스안에서 간식용으로 먹을 과자, 수박,소주 등을 챙기고
    단동시를 뒤로 하였다.

  -   약 1시간 달리니 비포장도로가 나와서 정말로 우리나라의 60년대 풍경이라
    감회가 새로왔다. 웬걸 움퍽 패인 곳에 물이 있으며. 가끔은 차에서 내려 걸어야 되고 튀위스트를
    추는 거와 같이 흔들리고 조금은 힘든 길이다.  이명화박사가 아이디어를 내어 버스2좌석의 중간에
    앉아서 자동으로 튀위스트를 추면서 갔다. 중간에 냇가에서 잠시 발을 담그며 수박 등 간식을  하고
    농촌 마을도 구경하고 다시 힘을 내서 출발하였다.

       버스안에서는 술한잔에 노래가락과 재담 및 수수께끼 등 하면서 지루함을 달래며 가는데
    50이 훨씬 넘은 나이의 이명화박사는 율동 섞인 동요만 계속 부르고(초등 시절 합창단),
    이영미 음악선생은 신나게 몇가락 뽑으며 흥을 돋우었고, 일행의 막내둥이 수환이는 학생답게
    랩을 한 목청 높혔다.

   -   호산장성을 출발한지 6시간만인 2시30분에 고구려 최초의 수도인 桓仁市에 도착하여
    호텔 겸 한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쓰루/중국/통화 가이드 3명과 함께 장군묘로 출발 하다.
    환인시는 만주조선족자치주로 인구는 약 30만명이며 BC 37년에 고구려 태조 주몽이 세워 AD 3년
    제2대 유리왕 때까지  40년동안 이곳에서 지냈으며,쌀,산삼,살구,나물 등이  특히 유명하다.

   -  장군묘로 가는 길목에 압록강 지류인 혼강(비류수)을 지나 야산을 지나 가니 도로공사중이다.  
    약15분 지체하다 출발 할 수 있었다.
    묘역에 도착하니 이곳 농촌은 지금은 한가한 시기인지라 모든 주민이 나와서 우리 일행을 반기고
    아이들은 묘역까지 안내역활을 한다.

      묘역 가는 길목은 온통 옥수수밭으로 들어찼으며  무덤으로 들어가는 문은 금년초에 폐쇄되어 안을
    돌아 볼 수 없었으나 그래도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88년도에 요녕성 인민정부에서 세웠다는
    米倉溝將軍墓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어 옛날을 증명해 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장군묘는 봉토묘로서 좌우둘레 110미터, 반경 45미터, 높이 8미터로 고구려 대형무덤인데
    장군인지,왕인지 확실치 않다고 한다. 이곳에서 2천년의 세월을 지켜 온 고구려인의 숨결을 짚어라도
    보듯 渾江은 주위를 애워싸며 변함없이 흐르고 있었으니 ....

   -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上古城子墓群으로 集石墓로서 100여개가 되었는데 지금은 30여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상고성자란 하고성자와 함께 지역이름으로 상고성은 평원성(평지에 있는 성)
    가까이 있으며 전쟁때는 산성으로 올라가 전쟁에 대비했으며 평화시에는 이곳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 고 살았던 평민들 무덤으로 알려진 곳이다. 고구려 무덤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이곳 상고성자의
    집석묘도 무너뜨려 돌을 가려내어서 밭을 일구고 한 나머지 옛모습은 점차 사라져 버려
    아쉬움과 서글품이 밀려 온다. 중국이 자기 조상이면 이랬을까?  2천년이 넘은 역사유물인데...

   -    다음으로 下古城子址는 흙을 다져서 쌓아올린 평원성, 즉 평지에 있는 성으로 지금까지도 남아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성곽이 있던 자리를 뜻한다. 당시 고구려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현장들
     이었다. 지금은 그 모두가 마을이 들어 서고 밭귀퉁이나 골목입구가 되어 버렸는데
     이것 역시 비석이 세워져 있어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마침 강원도 원주에서 11살에(현재 72세)건너 와서 살고 있다는 할아버지 부부한테 이곳 역사를
     상세히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고 가슴 뭉쿨한 동포애를 느낀다. 이곳에서도 '고구려문화탐방'
     이라는  프랑카드를 미녀삼총사(일행3명)가 열심히 펼치고 사진에 담기 바쁘다.

   -   오늘 일정을 마치고 호텔 근처에 있는 狗肉城이라는 단고기(영양탕)집에서 음식이 상당히 짰지만
     몸보신을 중국소주와 함께하고 슈퍼에서 간식거리를 쇼핑하고, 호텔은 여행중 제일 지저분하고
     냉장고도 없음(이곳 환인은 전부 그런 수준).


   8월 5일(목)

   -    오전 8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약 30분 걸려 五女山城에 도착 할 수 있었다.
     환인 북동쪽에 있는 고구려의 옛 성으로 해발고도 820미터인 천연 요새지로성의 동쪽에서
     약 1.8미터의 성벽이 발견되었으며,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이 나라를 세우고 최초로 쌓은
     성이라는 것이 국내외 학자들의 주장으로 바로 고구려 첫 수도, 홀升骨城이라는 곳이다.
    산성을 오르는 계단은 옛고구려 길은 S자형태로 오르고, 현재 길은 직선 999계단으로 이루어 져 있다.

   -   오녀산성의 남.서.북벽은 100여미터 쯤 되는 어마어마한 절벽으로 성벽을 쌓지 않더라도
     자연히 요새를 이루고 있어서 남동쪽 일부와 동쪽에만 쌓여있다. 오녀산성에는 동문.남문.서문의
     세개의 문이 있다.산꼭대기에는 남북 1000미터, 동서 300미터의 넓은 평지가 있는데 물이 나오는
     샘과 물이 고여있는 작은 연못이 있다. 현지에서는 이못을 天池라고 부르는데 이못의 물은 마른
     일이 없다고 한다.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병기저장소 있는데 흔적은 찾기가 힘들다.
    꼭대기 맨 남쪽 끝에는 장수가 군사를 지휘했다는 점장대가 있는데 여기서 내려다 보면
    멀리 혼강과 환인 시내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또한 온돌방으로 된 거주지 흔적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고구려문화의 숨결이 느껴진다.

   -   오녀산성이라는 유례는 고구려 이후, 장군 장천룡군대가 염증을 느낀 나머지 처자를 거느리고
    호적을 물리치러 이곳에 왔다가 산 좋고 물이 좋아 터를 마련해 살기로 하였는데, 호적을
    물리치고 무예가 출중한 여자 5명을 뽑아 이 산성을 지키게 했는데,  비오는 날 호적이 침입해 위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으나 비가 오기때문에 아군을 부르는 봉화술을 피울 수가 없게 되어, 五女가
    대항하여 싸우다가 장렬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붙혀진 이름이 오녀산성으로
    오늘날까지 불리워지게 된 그 연원이다.    
  
   -   이곳 오녀산성에서 진교춘사장께서 사진촬영에 심취하다가 길을 잃고 중국경비대의 도움으로
    먼저 하산하여 일행을 당황케 하시더니, 오녀산 포도주공장에서는 다섯여자의 여심에 취하여
    일명 지갑사건으로 잠시 소란하였음을 상기시켜 본다.

   -   환인 민족자치현에 있는 조선족중학을 잠시 들렀는데, 이곳 학제는 소학교(초등학교),
    초중학교(중학교), 고중학교(고등학교)로 되어 있는데 국가고시 50점이상이면 합격이며,
    소수민족은 10점을 플러스 시켜 주어 혜택을 준다.

   -   환인시에서 중식을 하고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하여 고구려 제 2의 수도로 400여년 동안 통치한
    集安市에 오후 6시 30분에 도착 하였다.

   -  석식은 국내성불고기집에서 삽겹살, 불고기 등과 중국소주로 배불리 먹고, 당초 예정되어 있던
    호텔이 호강호텔이었는데 전기불이 나가 다른호텔로 변경하여 투숙하다.


  8월 6일(금)

   -   아침 일찍 일어나 인력거에 편승하여 압록강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압록강변을 산책하며
     강건너 북한땅을 바라보는 일행의 심정이 가까와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머나먼 곳, 이곳 중국에서
     압록강에 손을 담구며 정박해 있는 유람선들을 쳐다보면서 압록강이라는 푯말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호텔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8시 20분에 집안박물관으로 향했다.

   -   집안은 어떤 곳인가.  환인에서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천도한 고구려 두번째 도읍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곳이며, 국가의 대사인 제사에 쓸 돼지를 잡아 쓰려고 돼지를 잡아내다가
     그만 그 생돼지가 도망쳐 간 곳을 따라가 보니, 산 좋고 물 좋아 새 도읍지로 정했다는 바로
     그 유래의 땅이 집안인 것이다.그 때가 고구려 제2대 유리왕 22년, 이렇듯 우리도 이젠 그 생돼지가
     도망쳐 갔던 길을 더듬어 보려 한다.
  
   -   집안박물관은 1958년에 개관했으며 고구려 고분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들을 3관으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는 고구려 역대왕의  초상화가 있으며 제1관은 고구려 고분과 성에 관련된
     자료실, 제2관은 광개토대왕 비문자료실, 제3관은 고구려 유물자료실로 되어 있다.
     광개토대왕의 비문 탁본과 무용총 등의 고구려 유물들이 사진이나마 전시되고 있었다.

   -   박물관을 나와 그 유명한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5회분 5호묘로 향했다.
     지금은 굳게 닫힌 철문으로 공개하지 않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동쪽벽에는 청룡,
     서쪽벽에는 백호, 남쪽벽에는 주작, 북쪽벽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다 한다.바닥에는 관을 올려
     놓았던 관대가 남아 있으며, 가운데에 가장 큰 크기의 관대가 있고, 양 옆으로 하나씩의 관대가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주인남자, 왼쪽은 부인, 오른쪽은 첩의 시신이 놓였다 한다.

       세계 역사상 고분에 벽화가 있는 곳은 고구려벽화가 유일하다하니 우리 조상들이 위대하다고
     새삼 느껴진다.

   -    고구려 20대왕 장수왕릉(將軍陵)은 우산 기슭에 서쪽을 바라보고 놓여져 있으며 시기적으로
      5세기초라고 한다.

         이무덤 역시 일찍이 도굴 되었으며 정방형을 이루고 있다. 한변의 길이가
      31.58미터이고 높이가 12.40미터이며 화강암을 사용하고 있다. 층수는 모두 7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묘실은 5층 계단 중앙에 위치하고 있고 무덤 주위에는 버팀돌이 12개(지금은 한개가
      파손되어  11개)가 한변에 3개씩 정연하게 놓여 있다. 이 버팀돌은 자그만치 작은 것이 15톤이나
      되는 중량을 가지고 있기에 무게를 지탱하고 밀림을 방지 하는 기능도 겸했으리란 것을 알 수 있다.

   -    장군릉을 혹자는 '동방의 금자탑이다'라고 부르기도 하고 '동아시아의 피라미드'라고도 부른다.
     과히 그 섬세함이나 기술적인 면과 규모와 위용에서 능히 그렇게 부를만한 위대한 걸작이며
     유산이다. 그리고 이 무덤의 북쪽 50미터 부근에 장수왕릉에  딸린 무덤이 하나 있는데
     예전에는 5개였으나 지금은 1개만 오롯이 남아 있다. 이곳은 아마 첩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장수왕릉은 선대인 광개토대왕의 무덤 크기의 약 절반이하라 한다.

   -   장수왕릉 가까이에 있는 그 유명한 광개토대왕비로 향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제19대왕으로서 재위22년(391~412)동안 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으므로
     재위시에는 영락대왕이라 일컬어 졌으며, 사후의 시호는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다.

        재위기간동안 고구려의 영역을 크게 확장시켜 서로는 요하, 북으로는개원-영안, 동으로는 훈춘,
     남으로는 임진강 유역에 이르렀다. 아들 장수왕 때 단행되는 평양 천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장수왕 414년에 세운 비석이 광개토대왕비이다.

   -    이 비석은 四面石 碑로서 높이가 약 6.39미터인데,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동쪽  國岡上에
    대왕의 능과 함께 세워졌다. 지금은 옮겨져 1982년에 중국 당국에 의하여 새로 건립된 단층의
    대형 비각 속에 있다. 너비는 1.35-2.0미터로 한국 최대의 크기로 고구려 석비 특유의 형태다. 비신의  
    사면에는 14-15센치미터 정도 크기의 문자가 음각되어 있으며 현재에는 5밀리미터 깊이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비신의 4면에는 모두 44행 1,775자의 문자가 새겨져 있다.

   -   광개토대왕비문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서문격으로 제1면 1행에서부터
    1면 6행에 걸쳐 주몽의 건국 신화를 비롯하여 대주류왕으로부터 광개토왕에 이르는 대왕의
    世系와 약력 및 비의 건립 경위가 기술되어 있다.

       비문의  핵심을 이루는 2부는 제1면 7행에서부터 3면 8행에 걸쳐서 대왕의 정복활동과
    土境巡狩기사가 연대순으로 기술되어 잇다. 제3부는 제3면 8행에서부터 4면 9행에 걸쳐서
    능을 지키는  守墓人烟戶의 명단과 수묘지침 및 수묘인 관리규정이 기술 되어 있다.

       광개토대왕비에 기록된 정복기사는 정토와 복속 및 토경순수라는 당대 고구려 정치사의 다양한
    역사적 사실이 유기적 관련을 갖고 논리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전제 왕권의 확립을 통한고구려의
    국가적 성장을 알려주고 있다.

   -   광개토대왕비를 견학하고 나서 우리 역사책에 나오는  國內城으로 향했다.

       고구려의 두번째 수도. 지금의 만주 집안과 그 배후의 산성이다. AD 3년(유리왕 22년)에 국내성으로
    천도하고 국내성을 쌓았다고 한다. 발굴 조사한 결과 둘레는 2,686미터이며 성벽은 잘 다듬어진
    네모뿔형의  돌로 쌓았고 성벽의 높이는 5-6미터 정도라고 밝혀졌다. 성문은 모두 6개였으며,
    성의 네모서리에는 角樓터가 발견되었다.

       집안시가지 아파트들이 밀집해 있는 큰 길가에 반듯한 돌들을 쌓아놓은 모습이 즐비해 있는데
    이게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 고구려 수도를 에워싸고 있는 성곽이었다면 누가 믿을까--
    이제는 사람의 키를 넘지 않게 허물어지다 만 그 돌들을 정원처럼 생각한 듯 아파트들이 앞뒤로
    높이 솟아 있으니 고대역사가 현대사에 밀려난 역사의 현장을 보는 듯하며, 이런 것이 바로 허망한
    세월의 흐름일까.  
       단지 중국 당국에서는 국내성이라는 철판으로 세워놓은 글씨의 안내문이 그걸 잘 대변하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  그리멀지 않는 곳에 있는 丸都山城으로 발길을 돌렸다.

       환도산성은 환도산에 있으며 국내성 북쪽 2.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환도산성의 최고봉은
    676미터이며 서쪽은 깊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있고 남쪽은 통구하로 연결되고 그 끝이 단애를 이루어
    천연요새로 이루어져 있다.

      성안에는 飮馬池(말이 물을 마시며 쉬는 곳)라는 샘물이 있으며,
    음마지 서쪽에는 원추형의 돌로 쌓은 축대가 있었는데 이곳이 바로 산성안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점장대이다. 점장대 바로 뒷부분에 병영터가 있으며 점장대에서 약 500미터 올라가면 옛궁전터가
    있는데 지금은 전쟁의 폭격으로 인해 그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   환도산성에서 걸어내려오는 길목 곳곳에 흩어져 있는 통구적석고분군들을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이 약 12,000기가 있는데 이곳에 약 1,000기가 몰려 있다고 한다. 이 고분은 누구 묘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당시 귀족이나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장군들의 묘로 추정된다고 한다.
    장군묘와 모양은 거의 같았으나 그 규모가  작은 돌들로 쌓아 만들어 졌다는 점이 달랐다.

   -   집안시의 고구려 유적을 둘러본 후 통화시로 향했다.

       통화로 가는 길목에 오녀봉밑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통화가이드가 마침 통화조선족중학교 교사라
     학교를 방문하기로 하였다.
       이학교는 약 1,000여명의 조선족이 다니고 있으며, 선생님의 평균연령이 약35세로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젊고,교장선생님(41세) 말에 의하면 중국어를 배우기 위하여 우리나라 유학생이
     13명 있다고 한다. 또한 부산 항도중학 및 배화여중과도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식당은 한끼에 한화로 약 400원이고 입시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  백두산으로 출발하는 야간 열차를 타기 위해 일찍 식사를 하고 나니 시간이 남아 일행은
    단체로 사우나에 들렀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아주 친절히 안내를 해 주었다.

   -   통화시에서 오후 10시 18분에 출발하는 야간 침대열차에 몸을 실었는데 일행 일부는
     잠을 청하고, 진사장과 류사무국장은 통로 창가에 앉아 국산 소주와 오녀주를 마시며,
     하늘 중간에 걸쳐 있는 휘영찬 달과 별과 함께 이태백이 되어 본다.


   8월 7일(토)

   -    백두산 입구에 있는 이도백화역에 오전 5시 50분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전용버스를 타고 백두산(중국은 장백산이라 부름)입구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를 한정식으로 마치고
     짚차를 타고 천문봉으로 꼬불꼬불 올라가니 정상 바로 밑에 도착한다. 이곳 중국땅에서는
     천문봉(2670미터) 으로  올라가는데  걸어서 약 5분 걸렸으며, 이날은 운이 좋아 천지를 잠시잠시
     볼 수 있었으며, 프랑카드를 들고 연신 앗싸를 왜치며 기념촬영을 했다.

   -   천문봉에서 짚차로 다시 내려와 이번에는 장백폭포를 통해 천지에 오르기로 했다.
     장백폭포 오르는 초입에 백두산온천이 잇는데 백두산온천은 장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온도가
     최고 섭씨 82도씨로 계란과 옥수수를 삶아 팔아 우리도 간식용으로 샀다.
    
   -  조금 올라가니 장엄한 장백폭포가 나타난다.
    천지에서 흘러내려온 은하강은 200미터 남짓 흐른뒤 수직으로 된 절벽에 66미터가 되는 폭포가  되어
    굉음과 함께 하얗게 뿜어내는 장백폭포 물줄기가 시원하기 그지없다. 천지 오르는 주변에 있는
    푸른 울창한 미인송 숲도 일품이다.

   -    밑에서 약 1시간 30분 오르니 天池가 보인다.
     天池는 압록강 ,두만강의 발원지인 천지는 분화구로서 남북의 길이가 4.9킬로미터, 동서의 길이가
     3.5킬로미터로 둘레는 13.4킬로미터로 상당히 큰 호수를 이루고 있다. 평균 수심은 204미터이고,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은 312.7미터나 된다.

        천지 자체의 수원은 대기층에서 떨어진 수분이라는 설과 솟아오르는 샘물이라는 설이 있는데
     아직까지 정확히 검증된 바 없다.  천지에서 일행은 간식과 기념촬영, 천지물을 몇통씩 받아가지고  
     하산하다.

   -   아침에 식사한 식당으로 다시와서 2시 30분에 한식으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바로 근처에 있는
    작은천지인 소천지를 관광하려 하니 며칠전부터 입장료를 받아 포기하고,  밤열차 여행과
    등산으로 인하여 일행 모두가 모두 지쳐 있어 저녁식사 시간까지 각자 휴식하기로 하고
    장백산 대우호텔로 향했다.

   -   저녁식사를 하고 나니 비가 계속내려 날씨가 여행기간중 처음으로 춥다는 것을 느꼈다.
     각자 휴식을 취하면서 취침에 들다.


   8월 8일(일)

   -   이제 여행도 하루를 남겨 두었다.

   -   아침 식사를   마치고 이도백화에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들러 백두산 각종 식물과 동물들에 대한
     박제 및 생태계에 대한 견학을 마치고 울창한 송림을 거쳐 용정으로 출발하다.
     백두산에서는 계속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비가 거쳐 제법 맑은 하늘이다.

   -    길림성에 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 연길로 발길을 향해 북한식당인 유경반점에서
     맛있는 북한음식으로 식사를 하고 북한에서 파견나온 갓 20대인 아가씨들의 환대와
     '반갑습네다' '휘파람' 등 북한노래와 남한 노래를 들으며 가슴 뭉쿨함과 어쩌면 천편일률적인
     소리에 다시한번 슬픔을 간직했다.
        우리 일행과 손에 손잡고 노래 몇가락과 사진촬영 등을 하고,
     한 아가씨는 자기동생이 수환이와 나이가 똑같은 16살이며 보고싶다고 눈물을 글성이며  
     물한통을 선사하기도 --

   -   용정으로 가는 도중에 멀리 일송정이 아주 굿굿하게 서있는 모습이 우리 선조들의 기개와
     비슷하고, 해란강을 지나고 용문교를 건너고 이름있고 우리의 민족혼을 일깨웠던 대성중학교에
     오후 4시경에 도착하였다.

   -    대성중학교(현재는 용정시의 6개 학교가 통합되어 용정중학교로 변경됨)는 민족시인으로 알려진
     윤동주가  이학교를 다녔고 ,정일권 전 총리 등 유명인사가 상당히 많다. 또한 박경리의 대하소설인
     土地에 나오는 배경의 한부분이기도 하다.

        학교내 구교사를 개조하여 만든 2층건물에는 6개학교 출신별 사진과 경력들을 전시하고
     안내자가 일일이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용정중학교는 일본통치시 항일의사들을
     배양한 곳으로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에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새겨져 있다.
     이처럼 용정은  한국의 항일역사와 함께 하였기때문에 한국선조의 숨결이 배어 있다.    

   -   도문시로 자리를 옮겨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도문대교위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생활상이 참 빈곤하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원래는 도문대교 중간까지 가서 한발짝 정도 북한으로 갈 수 있다는 안내자의 말이었는데
     어저께 탈북자가 있어서 통제하여 실행하지는 못하고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을 뒤로 한채
     연길로 향했다.

   -  연길대우호텔에서 7시 30분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10시에 쫑파티를 하기로 하였다.

   -  호텔 앞 슈퍼에 들러 옥수수 술과 간단한 안주 등을 준비하고 진사장 방에서 모두 모여
    그동안 사용한 공동경비 내역에 대한 설명과 각자의 자유로운 고구려문화탐방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는데 대부분 참가자들이 상당히 좋았다는 평이었다. 이번 기회에 우리민족에 대한 새로운
    조명과 다시한번 겨레의 소중함을 느꼈다는 이야기 등을 마치고 취침하다.

  
   8월 9일(월)

   -   7시에 기상하여  연길공항에서 11시 45분에 출발하는 KE6836 편을 타기위해 분주히 짐을 챙긴다.
     일행 모두는 그동안 매일매일 호텔이 바뀌면서 지냈기때문에 짐꾸리는 선수가 되어 있었다.
     연길공항을 배경으로 고구려문화탐방이라는 프랭카드와 함께 다시한번 찰칵하며
     만주의 우리땅 고구려유적 및 유구한 역사의 숨결을 뒤로하다.


                                                              ( 글쓴이 :   한국산악문화협회    사무국장   류  호  정)

    #  사진은  한국산악문화협회 - 산악문화단 - 산악문화활동을 클릭하면
       자세하게 감상하실 수 있읍니다
이름아이콘 김동환
2004-08-25 16:41
 가방에 자유를 넣고 떠난 여행
그 과정과 우연속의 즐거움을 만끽한듯 싶습니다.  부럽고.......

우리의 역사여행  너무 잘 기술하여 주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감사
교춘형 비화를 나중에 이야기 해 주십시요 꼭.
   
이름아이콘 안상원
2004-08-25 17:10
 자세하게 글을 써준 류 호정 사무국장께 감사를 드리며 즐거운 여행을 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앞으로 이런 의미 있는 여행과 산행을 잘 개발하여 여러 회원들이 함께 즐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람니다.
   
이름아이콘 김만식
2004-08-25 19:00
 진교춘!!!파이팅!!!
   
이름아이콘 이창용
2004-08-26 10:00
 빨리 홈커밍데이를 했으면 좋겠네요..
형님들 보고파요~~~ㅜㅜ
   
이름아이콘 진교춘
2004-08-26 16:36
 나에대한 비화는 없고 단지 오녀산성에서 오녀귀신에게 홀렸는지 길을 잃어 먼저 내려와서 기다렸고 포도주공장에서 지갑을 잃어 버려, 소동을 피웠다. 운전수가 다행히 지갑을 찾아 주었는데 잠을 자고 나니 미국 Yosemitte에서 산 등산모자를 잃어 버렸다. 아마도 오녀귀신이 가져간 것으로 알고 액땜으로 생각하고 더 찾지 않았다. 아름다운 백두산과 천지,,,  그것은 바로 내 이름  Volcano, 볼캬노다...  
   
이름아이콘 유정건
2010-08-03 13:07
 안녕하세요
골드투어의 유정건이사입니다,
우연히 글을 찾다가 이곳에 들릅니다. 아주 세밀히 쓰신 여행기이시네요
잘 보고갑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시면  바이칼호 지역  이르쿠츠크의 몽골족 계통인 부리야트족마을을 찾아가시면 저희의 60년대정도의 시대상을 읽을수
있는 귀한 경험을 하실수 있고 또는 발해역사지역인  목단강,경박호 지역을 보시면 아주 좋은 시간을 보낼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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