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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보고
  
작성자 김신혜        
작성일 2021/07/03 (토)
분 류 YM 산행
등반일자 2021/06/24
장소,코스 설악산 몽유도원도
등반대원 김성훈(T), 김신혜(S, L), 김지명, 한희재
ㆍ추천: 0  ㆍ조회: 58      
2021 집중RC 6/24 김신혜
2021/6/24 <몽유도원도>

 “선등 설 거 아니면 남는 길이나 가라”는 대장님의 명령으로 남들 다 재밌는 미륵장군봉 하러 갈 때 나는 성훈, 희재, 지명이와 몽유도원도 길을 가게 되었다. 성훈이가 얼마 전 지희 생일바위 때 한 번 가본 길이라 선등을 서기로 했다. 설악산에서 바위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데, 집중RC 내내 외설악만 갔기 때문에 말로만 듣던 내설악 어프로치가 얼마나 짧을지 기대가 됐다. 어프로치를 시작하긴 했나 싶을 때쯤 몽유도원도 시작 지점에 도착했다. 어프로치가 이러게 짧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희재와 지명이 둘다 자연바위 경험이 거의 없지만 그나마 지명이가 경험이 더 있을 것 같아서 라스트를 맡기기로 했다. 결국은 이 날 내가 세컨과 라스트를 다 하게 됐지만...

 7시 50분에 성훈이가 선등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그런데 딱 보기에도 길이 너무 쉬워서 이걸 굳이 빌레이를 봐야 하나 싶게 생겼다. 성훈이가 가는 속도를 보니까 시야에 안 들어오는 부분도 다 쉬운 것 같아서 그냥 셋이서 연등으로 갔다. 2피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서 빌레이 없이 아예 엔자일렌으로 갔다. 희재가 약간 걱정됐는데 빌레이 없이도 무서워하지 않고 잘 갔다. 그만큼 암벽이라기엔 너무 쉬운 길이기도 했다. 빌레이 없이 갔더니 8시 4분에 2피치를 완료해서 행복 산행이 가능할 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1, 2피치는 완전 등산로 같았는데 3피치는 시작 부분이 약간 고도감이 있게 누워있었다. 막상 가보니까 손이 다 너무 좋고, 한 두 동작만 하면 턱으로 올라설 수 있어서 쉽게 갈 수 있었다. 갑자기 경사가 생겨서 어프로치화를 벗고 암벽화로 갈아 신을지 고민했었는데 안 갈아신길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빌레이 보는 구간을 빠르게 마치고 3피치 남은 부분은 다시 엔자일렌으로 갔다. 8시 37분에 바위 왼쪽 뒤편에 있는 하강 포인트에 도착했다. 여기서 한 번 하강하고 오른쪽으로 살짝 걸어 올라오니 4피치가 있었다. 이 때까지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4피치는 조금 어려울 수 있어서 빌레이를 보기로 하고, 성훈이 다음 순서로 희재가 올라갔다. 희재한테 자일 통과할 줄 아냐고 물어보니까 그렇다고 해서 올라가라고 하고 나는 여유롭게 선크림을 발랐다. 희재가 올라가다가 자꾸 성훈이한테 자일을 풀어달라고 해서 뭔가 이상하다 싶어 봤더니 퀵에 걸린 자일을 안 풀고 위로 쭉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할 줄 안다고 했어도 거의 신입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잘 지켜봐주지 않아서 고생을 한 것 같아 좀 미안했다. 애가 완전히 겁을 먹었는데 그 와중에 다시 볼트 있는 데까지 내려와서 자일을 풀고 뒷자일을 통과시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다시 올라오다가 튀어나온 바위에 있는 작은 돌기에 자일이 살짝 걸려서 안 빠졌는데 그것 때문에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해서 시간이 또 한 번 지체됐다. 성훈이가 위에서 줄을 풀어도 퀵에 걸려 있어서 걸린 거 빼는 걸 도와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올라가서 덜 팽팽해지게 한 다음에 풀라고 했는데 무서워서 안 된다고 계속 버텼다. 그 바로 다음 퀵에서는 자기 자일은 뺐는데 뒷자를 통과를 안 시켰다. 이미 조금 올라간 상태였는데, 거기서 뒷자를 통과시키려고 시도하다가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퀵 놔두고 올라가라고 했다. 여기서 희재 혼자 거의 30분을 잡아먹었다. 행복 산행의 꿈이 실패로 돌아갈 것 같은 예감이 들었고 이제부터 나라도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4피치가 참 스펙타클했던 것 같다. 이렇게 다사다난하게 희재가 올라간 다음에 지명이가 무전기를 떨어뜨렸다. 왜냐고? 개미 보고 놀라서... 손에 있던 무전기를 절벽으로 떨어뜨렸다. 윤수한테 말할까 하다가 너무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서 우선 내려갈 때까지는 비밀로 하기로 했다. 불쌍한 무전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무전기는 며칠 뒤 하산길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지명이도 속도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4피치 등반을 마쳤고 나도 올라가는 데 5분 정도 걸렸다. 희재가 고생했던 첫 볼트를 지난 다음에 왼쪽으로 가는 건지 오른쪽으로 가는 건지 애매했는데 고도감이 더 적은 왼쪽을 선택했다. 손이 엄청 좋지는 않아서 여기 기어 내려오느라고 희재가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았다. 맨날 촉촉하거나 비 내리는 바위만 하다가 이 날은 모처럼 날이 좋았는데, 바위에 발이 잘 붙는다는 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다. 아니 바위에서 발이 안 밀린다고? 밟으면 밟힌다고? 4피치를 지난 다음 또 하강을 해야 되는데, 하강 완료했을 때가 10시였다.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가면 5피치 시작 지점이 있다.

 5피치는 지금까지 지나온 곳들보다 좀 어려워 보였는데, 그래도 어렵지 않아서 5분 만에 끝낼 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성훈이의 명령으로 내가 세컨과 라스트를 모두 맡게 되었다. 그래서 애들이 올라가는 걸 우선 지켜봤는데, 둘 다 공통적으로 두 군데 정도에서 조금 애를 먹었다. 내 차례가 돼서 올라가다가 애들이 어려워하던 데가 어디지?하고 찾으려고 보니까 이미 그 부분을 지나와있었다. 그냥 턱 하나를 넘으니까 끝이었다. 물론 신입들이랑 이런 비교를 해야 하는 내 신세가 처량하긴 하지만, 애들이 힘들어한 곳을 어려운지도 모르고 지났다는 게 뿌듯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턱을 넘은 다음에 손이 없어서 벙어리 칸테를 레이백으로 뜯고 허벅지로 거의 재밍하다시피 해서 올라갔다. 여기만 넘으면 쉬웠고, 전체적으로 하이스텝을 많이 쓰는 느낌이었다. 다 올라오고 나서 성훈이한테 물어보니까 성훈이는 내가 고생했던 벙어리 레이백이 어디였는지 기억도 못했다. 그냥 하이스텝으로 일어나서 위에 있는 걸 잡고 갔다고 했다. 내가 키 때문에 좋은 홀드에 손이 안 닿았던 건지 아니면 그냥 머리를 안 써서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몸이 좋아서 잘 올라간 걸로...

 5피치가 끝난 다음 또 걸어서 10시 50분에 6피치 시작 부근에 도착했다. 약간 고도감이 생겨서 턱 하나를 넘을 때 성훈이가 나무에 자일을 픽스하고 줄을 잡고 올라오게 했다. 나는 설령 떨어진다 하더라도 뒤쪽으로 살짝 공간이 있고, 바위 중간에 있는 턱을 잡고 한 동작만 올라가면 되길래 자일을 안 잡고 그냥 올라갔다. 그랬더니 성훈이가 위험하다고 뭐라 했다. 이날 산행에서 느낀 건 성훈이가 안전에 정말 신경을 많이 쓴다. 윤수랑 다닐 때는 못 느끼던 섬세함을 많이 느꼈다. 이 바위로 올라온 다음에 성훈이가 길을 찾으러 갔다. 한 번 갔다 온 길인데도 성훈이가 계속 길에 확신이 없어 보였는데, 알고 보니 길치라고 한다. 올라온 곳에서 안쪽으로 들어가서 또 쭉 걸어갔다. 약간 내려오면 우측에 벽이 있는데 거기서 가장 계단 같은 곳으로 올라가면 된다. 계단 같은 턱을 올라가서 성훈이가 나무에 슬링으로 확보하고 총 5미터 정도를 빌레이를 봐줬다. 성훈이가 가면서 손홀드를 알려주고 가서 오른쪽에서 왼쪽 방향으로 난 손홀드를 야무지게 잡고 올라갔다. 왼쪽에서 벽이 밀고 있어서 왼발부터 턱에 올린 다음 왼발에 힘을 싣고 일어서니까 또 왼쪽 벽에 오른손으로 잡을 만 한 게 있었다. 그렇게 한 동작 일어서면 아예 계단이다. 11시 15분에 나무가 있는 6피치 시작점까지 모두 올라왔다.

 6피치 시작점에서 성훈이가 가지고 있는 슬링 2개를 모두 우리 확보하라고 두고 갔다. 세컨을 보는 나도 확인을 했어야 하는 부분인데 그러지 못했다. 성훈이가 이번에는 지명이 말고 내가 두 번째로 올라오라고 하길래 ‘음... 빌레이 없다고 생각하고 올라오라는 뜻이군’이라고 생각하고 애들한테 갓신혜 프리솔로 하는 거 보라고 하고 올라갔다. 첫 볼트를 지나면 왼쪽에 각진 손홀드가 있는데 방향이 엄청 좋지는 않았다. 왼손 바로 위에 있는 크랙에 오른손을 올리니까 손이 좋았는데, 왼발 위치 때문에 거기에 힘을 실으면 왼쪽으로 몸이 돌 것 같았다. 사실 바로 위에 나무가 있었는데 왠지 나무를 안 쓰고 하고 싶어서 그냥 그 크랙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몸이 왼쪽으로 빙그르르 돌았다. 그래도 손홀드가 좋아서 안 놓치고 바로 일어나서 결국 나무를 잡고 올라갔다. 그 위로는 쉬웠는지 딱히 기억나는 부분은 없다. 올라오니까 성훈이가 크랙에 캠 하나를 끼워놓고 확보한 채로 거기다 빌레이를 보고 있었다. 내가 이럴 때는 캠을 두 개는 설치해야 한다고 하니까 남은 캠이 사이즈가 맞는 데가 없어서 그게 최선이었다고 했다. 내가 떨어지고 캠이 터지면 손으로 나무를 잡아서 버틸 준비를 하고 빌레이를 봤다고 했다. 나중에 윤수한테 말하니까 택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후에 밝혀진 성훈이의 충격 고백에 따르면 나중에 올라가서 보니까 남아 있는 슬링이 있었다고 했다. 그냥 갓신혜 프리솔로 할 운명이었던 걸로...

 다음으로는 희재를 올렸고, 내가 희재 빌레이를 보는 동안 성훈이가 나무에 줄을 고정하고 하강 포인트를 찾으러 내려갔다. 가다가 줄이 모자라서 다시 올라와서 줄을 넉넉하게 빼서 갔다. 하강 쌍볼트랑 우리가 있던 나무에 양쪽으로 자일을 픽스해서 애들한테 확보줄을 걸고 내려가게 하고, 나는 지명이 빌레이로 내려갔다. 떨어지면 위험하긴 하겠지만 각이 많이 낮은 길이었다. 인수봉에서 하강 포인트로 이동할 때도 자일 없이 가는 걸 생각하면 이 구간에서 빌레이를 보는 게 필수는 아닐 것 같다. 그래도 성훈이가 이런 부분에서 안전에 신경 쓰는 게 대견했다. 하강을 마치고 오른쪽 벽으로 갔다. 성훈이가 빌레이를 보려는 것 같아서 7피치 시작인가?했는데 그냥 위험할까봐 손으로 자일을 당겨준 거였다. 성훈이는 가운데로 올라가고 지명이는 오른쪽 쉬운 데로 올라갔다. 희재는 갑자기 도전 정신이 생겼는지 왼쪽으로 가려고 하다가 결국은 오른쪽으로 넘어갔다. 나는 중앙에도 손이랑 밟을 데가 있는 것 같길래 굳이 오른쪽으로 가지 않고 성훈이랑 똑같이 갔다. 그런데 지명이가 손으로 자일을 엄청 세게 잡아당겨서 내 힘으로 했다기보다는 거의 끌려 올라왔다.

 조금 더 걷다보니까 지희가 프리솔로로 올라갔다던 구간이 나왔다. 우리는 성훈이만 프리솔로로 올라가서 우리 빌레이를 봐줬다. 지희 생일바위 때 지희가 프리솔로로 올라가고, 윤수도 지희가 그렇게 가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올라가고 성훈이도 그런가보다 하고 올라갔다고 한다. 성훈이가 자기는 자기가 떨어져도 죽고 윤수가 떨어져도 죽고 지희가 떨어져도 죽으니까 죽을 확률이 제일 높다고 했다는데 너무 웃겼다. 여기 홀드가 다 잘 잡히기는 하는데, 그래도 떨어지면 기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 프리솔로로 갈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를 지나고 나서도 7피치가 안 나왔다. 또 걸어가다가 성훈이가 세 명을 연등으로 빌레이를 봐주고 그 다음에는 네 명이 엔자일렌으로 갔다. 성훈이도 길을 찾는 데 확신이 없어 보이고 지희가 6피치에서 7피치 가는 데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건 이상하다고 말해서 계속 제대로 가는 게 맞는지 속으로 의심을 했다. 꽤 걸어가다보니 중간에 나무가 하나 쓰러져 있었다. 우리가 서로 자일로 연결된 상태라 성훈이가 처음 가는 사람이 가는대로 다 따라가야 하니까 우리한테 나무 위로 갈지 아래로 갈지 선택하라고 했다. 희재 의견대로 아래로 가기로 했다. 아래에 있는 공간이 좁아서 지명이가 머리를 써서 가방을 나무 위로 올리고 아래로 지나갔는데, 그 바람에 나무에 있던 끈적끈적한 게 가방에 다 묻었다. 때로는 머리를 안 쓰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갑자기 성훈이가 지난번에는 지희랑 윤수는 나무 아래로 가고 자기는 위로 갔다면서, 그 말은 즉 그때는 여기서도 엔자일렌을 하지 않고 갔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걷다가 성훈이가 또 한 번 빌레이를 봐서 이제는 진짜 7피치 시작인가?했는데 또 아니었다. 7피치 대체 언제 나와!!! 6피치에서 하강을 마친지 거의 2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6피치 하강 지점에서 기다릴 때만 해도 행복 산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날도 역시나 행복 산행이 물거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 구간은 혹시나 해서 빌레이를 본 거지 사실 굳이 빌레이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쉬워보여서 그냥 어프로치화를 신고 갔다. 아직도 7피치를 못 찾아서 성훈이가 길을 찾으려고 빌레이 없이 줄을 달고 직상해봤다. 찌르는 소나무가 많아서 고통을 받았다. 아무래도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내려다보더니 왼쪽에 있는 다른 길에 리본이 보인다고 했다. 찌르는 소나무가 길이 아니라고 아까부터 얘기한 것 같은데 그걸 안 들은 우리 잘못이었다. 다시 기어 내려와서 다 같이 왼쪽 길로 이동했다. 2시쯤 또 빌레이를 봐야 하는 곳이 나왔다. 처음에는 연등하려고 했다가 좀 아닌 것 같아서 지명이가 기어 내려오고 내가 바로 성훈이 빌레이를 봤다. 7피치를 찾아 걸어오는 동안 먹구름이 나타났는데, 성훈이가 올라가는 동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희재가 올라가다가 또 퀵에 자일을 잘못 통과시켰고 비 때문에 시간 단축을 위해 지명이랑 나는 연등으로 올라갔다. 이후로도 계속 엔자일렌으로 올라가다가 드디어 7피치를 만났을 때가 시간이 2시 40분이었다. 거의 3시간 만에 도착했다... 가면서 웃겼던 게 내가 카톡으로 징징거리니까 맞은편 미륵장군봉에 있던 윤수가 우리 위치를 보고 조금만 더 가면 나올 것 같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미륵장군봉에 붙어 있는 팀이 너무 많아서 애들을 잘 못 봤는데 몽유도원도에는 우리 팀밖에 없어서 잘 보였다고 한다.

 성훈이는 기이한 자세를 선보이며 10분만에 7피치를 끝냈다. 앞서 올라온 길과 다르게 7피치는 벽이 상당히 서있었다. 가다가 어마어마하게 큰 낙석 위험 돌이 있어서 알려주고 올라갔다. 성훈이는 워낙에 힘이 좋고 가벼우니까 쉽게 올라가는 것 같았는데 그걸 보고 쉬운 길이라고 판단해버릴 수는 없었다. 희재가 엄청 고생을 했고, 성훈이가 말하는 자세를 시도해보다가 결국 다른 자세로 올라갔다. 많이 어려운가보다 했는데 또 지명이는 의외로 쉽게 지나갔다. 막상 가보니까 첫 번째 크럭스에서 희재의 심정이 백번 이해됐다. 자꾸 자세를 잡고도 힘을 주려고 안 하길래 어떻게 됐든 한 번 시도해보라고 계속 말했는데, 가보니까 진짜 홀드랑 자세가 다 안 좋았다. 성훈이가 자꾸 자세를 알려주는데 그건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나도 희재랑 비슷한 자세를 하게 됐다. 성훈이는 오른쪽을 쓰라는데, 왼쪽 허리쯤에 너무 왼발을 대고 싶게 생긴 곳이 있었다. 거기에 왼발을 올리면 좀 쉴 수도 있어서 일단 쉬었다. 몇 번 시도해보다가 힘을 싣지도 못하겠고 힘이 다 빠지기도 해서 텐션을 받았다. 쉬면서 보니까 왼쪽에 내 키로 최대한 뻗으면 닿는 조금 좋은 손홀드가 하나 있었다. 왼발을 왼쪽 위로 찢어서 좋은 홀드를 밟고, 왼손으로는 그 홀드를 잡고 이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일어났다. 며칠 전 국립등산학교에서 했던 것과 비슷한 자세였다. 한쪽에만 손과 발이 있고 다른 쪽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는 자세. 왼발의 미는 힘과 왼손의 당기는 힘으로 체감 상 거의 지구를 들어 올리는 듯한 느낌으로 몸을 끌어올려서 오른손으로 위에 있는 좋은 홀드를 잡았다. 여기서부터 지희와 성훈이에게 존경심이 생겼는데, 이 피치에는 크럭스가 하나 더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를 넘어서 왼쪽으로 가니까 또 벽이 서있었다. 여기서도 성훈이가 자기만의 자세를 알려줬는데, 신체 조건이 너무 달라서 따라할 수 없었다. 두려움에 떨면서 거의 무릎으로 아등바등 올라와서 7피치를 마쳤다. 갓지희 갓성훈 존경해...

 3시 40분에 내가 마지막으로 7피치 등반을 완료했다. 성훈이는 나무에서 빌레이를 봤는데 조금 더 올라오니까 벽에 확보점이 있었다. 엔자일렌으로 조금 더 올라와서 하산을 시작했다. 4시쯤 하산을 시작했는데, 바위 뒤편을 돌아서 내려가야 해서 처음에 조금 위험했다. 좀 더 안전한 하산로가 시작되는 곳에서 물이랑 행동식을 먹으면서 좀 쉬었다. 형님들이 몽유도원도 팀은 하산할 때 좀 고생할 거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힘들기는 했지만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지명이가 큰 돌 하나를 밟고 흔들려서 나한테 흔들리니까 조심하라고 알려줬는데 그걸 보고 ‘아, 이 하산로 정말 안전하구나’라고 생각했다. 외설악에서는 모든 바위가 그렇게 흔들리는 게 기본이라 그 정도로는 아무도 조심하라는 말을 하지 않으니까... 하산로가 길고 길이 좋지 않기는 한데 사람들이 나무에 밧줄이나 끈 같은 걸 설치해서 대부분의 구간을 손으로 잡고 내려갈 수 있게 해놓았다. 희재는 팔에 힘이 완전히 빠져서 뒤돌아서 줄을 잡고 내려갈 수가 없다면서 앞을 보고 앉아서 줄을 잡고 내려갔다. 그렇게 가다가 두 번 크게 굴러 떨어졌다. 희재가 하는 대로 해봤더니 정말 위험한 것 같아서 바로 뒤돌아서 손으로 줄을 잡고 하강하듯 내려갔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계곡을 만난 후에는 제대로 비가 쏟아졌다. 안 그래도 느린 속도가 비 때문에 더 느려졌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차가 없어서 범진형님이 마중을 나오셨는데 생각보다 하산이 훨씬 길어져서 많이 기다리셨다. 계속 희재랑 지명이를 기다리면서 가다가 거의 다 도착해서 내가 먼저 차에 가보니까 주무시고 계셨다.

 청원길에 갔던 윤수 팀은 우리보다 30분 정도 먼저 하산해서 마트에 다녀왔다. 숙소에 도착했는데 비를 맞아서 그런 건지 이상하게 너무 피곤해서 밥도 안 먹고 2층에 올라가서 매트에 누웠다. 살짝 잠들었다가 캠프송 부르는 소리에 이끌려 아래로 내려갔다. 밥 생각이 별로 없어서 고기 몇 점 주워 먹다가 안에 들어와 보니까 정훈이가 화채를 만든다고 수박 속을 파고 있어서 같이 수박을 파내고 화채를 만들었다. 다음날 등반을 어떻게 할지 정해야 하는데 피곤했는지 유빈이와 준아가 일찍 잠들어버렸다. 확실하게 산에 갈 팀은 돈하형님 탑으로 별 따는 소년들을 가는 거였는데 애들이 가고 싶어 할지 아닐지를 몰라서 팀을 정할 수가 없었다. 윤수가 청원길에서 고생을 많이 해서 유빈이랑 준아는 내일 쉬고 싶어 할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금요일이라 또 저녁에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데 외설악에 가는 건 부담이 됐다. 저번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이랑 똑같은 꼴이 나면 안 되니까... 그래서 속도 빠른 사람들만 가면 가겠다고 했는데 윤수가 돈하형님, 윤수, 나 이렇게 셋이서 가자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감사하게도 시한형님과 범진형님이 이끌고 국립등산학교에 데려가주시겠다고 하셨다. 거기다 범진형님은 ‘조커’ 카드로 만약 아침에 일어나서 유빈이나 준아가 산에 가겠다고 하면 그것까지 책임져주겠다고 하셨다. 돈하형님은 빨리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다른 형님들이 막걸리를 한 잔 하려고 하시길래 윤수랑 나랑 김치전을 부쳐드렸다...는 아니고 김치전을 부쳐드리려다가 김치전과 비슷하지도 않은 뭔가를 만들어버렸다. 윤수는 배고파서 자기도 먹을 생각으로 김치전을 만들려고 한 거였는데 상태를 보더니 그냥 자러 올라갔다. 나도 내가 먹을 생각으로 한 건 아니라 형님들께 던져놓고(?) 자러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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