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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보고
  
작성자 김신혜        
작성일 2021/07/03 (토)
분 류 YM 산행
등반일자 2021/06/23
장소,코스 설악산 4인의 우정길
등반대원 조유빈(T), 김신혜(S), 안정현, 박민규
ㆍ추천: 0  ㆍ조회: 45      
2021 집중RC 6/21~23 김신혜
2021/6/21

주말 동안 일을 하러 속세에 나왔다가 겸사겸사 종로에서 하네스를 새로 사고 동서울터미널로 향했다. 하네스를 사고 밥을 먹고 있는데 일이 하나 들어와서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 하네스 값 벌자’라는 생각으로 수락했다. 터미널 카페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줄리엔을 만나서 버스를 타고도 잠깐 일을 했다.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야 하나 싶었지만 설악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견딜 수 있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유빈이가 운전하는 차를 탔는데 심하게 덜컹거려서 타자마자 천장 손잡이에 머리를 박고, 오는 길에 도로변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같은 걸 박고 왔다고 해서 너무 무서웠다. 줄리엔이랑 내가 늦게 도착해서 다음날은 아침 6시쯤 여유롭게 일어나기로 했는데 결국 식탁에 모여 노닥거리다가 평소보다 2시간 더 늦게 잠들어서 총 수면 시간에는 별 차이가 없었다.

2021/6/22 <국립등산학교>

또다시 유빈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불안에 떨며 북설악 수바위로 향했다. 화암사 주차장을 지나면 차단기가 있고 등록 차량만 지나갈 수 있다고 하는데 차단기가 열려있어서 그냥 지나갔다. 차를 세우고 나니 비가 제법 거세게 내리기 시작했다. 레인커버가 있는 사람들은 가방에 씌우고, 레인커버도 없고 가방이 방수도 안 되는 나는 우산을 썼다. 윤수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산 입구로 향하길래 내가 이렇게 비가 오는데 정말 바위를 할 거냐고 물었더니 “일단 가야죠”라고 했다. 이게 맞나...싶었지만 대장님을 따라갔다. 어프로치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했는데 정말 눈 깜짝할 새에 수바위 앞에 도착했다. 비 때문에 주변에 안개가 자욱하고 이름도 水바위인양 완전히 물에 젖어 있었다. 윤수의 명령대로 바위 앞에서 짐을 내려놓고 비가 좀 그치거나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윤수가 걸어서 위로 올라가길래 나랑 성훈이도 따라 올라가봤는데 비 때문에 미끄러워서 좀 위험한 것 같았다. 나뭇가지에 발등을 걸고 거꾸로 매달리기도 하고(성훈, 윤수만 성공, 난 처참히 실패) 수바위 전설 안내문도 읽으며 놀다보니 10시가 돼서 오늘 바위는 포기하고 국립등산학교에 가기로 결정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져 등산학교에 가기 전에 유명하다는 막국수 집에 들렀다. 가만히 앉아 윤수를 보니 뻔히 등산 바지도 있는 애가 옷을 추리닝 바지를 입고 왔다. 윤수한테 오늘 바위 안 할 생각으로 옷 제대로 안 입고 온 거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씩 웃는다. 누구보다 등반 의욕 대단한 것처럼 굴더니 사실은 집을 나서기도 전부터 오늘 등반할 계획이 없었던 거다. 정말 소름이 돋았다. 식당에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들깨 막국수였는데 내가 들깨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서 물막국수를 시켰다. 윤수가 시킨 들깨 막국수를 한 입 먹고서야 식당에서는 유명한 메뉴를 시켜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나 들깨 좋아하네... RC가 다 끝나고 서울로 돌아온 지금 이 막국수 집에 다시 가서 들깨 막국수에 사리 추가해서 못 먹고 온게 가장 큰 한이다.

막걸리까지 야무지게 마시고 국립 산악 박물관에서 문리대 전시를 본 다음 바로 옆에 있는 국립등산학교로 갔다.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강사님이 우리를 맞아줬다. 나중에 여쭤보니 충청도 분이셨는데 충청도말을 쓰는 사람을 직접 만나본 게 처음이라 신기했다. 선등 빌레이 경험이 있는 몇 명만 빌레이 테스트를 보고 ‘세이프티 빌레이어’ 자격을 갖춘 다음 실내외에 있는 시설을 이용했다. 실내에는 오버행 보드, 인공 크랙, 인공 자연 암벽(?)과 높은 직벽이 있고, 오토빌레이 기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외벽에도 라인별로 문제가 있고 난이도가 표시되어 있어서 놀기 좋았다. 나는 인공 바위부터 올라가봤는데, 오토빌레이가 처음이라 줄에 매달리는 게 무서워서 밑에까지 다운 클라이밍으로 기어 내려왔다. 안전벨트처럼 한 번에 힘을 확 실어야 제동이 걸리는 건데 무서워서 조금씩 기어 내려오니까 제동이 안 걸리고 줄이 느슨해지기만 해서 더 무서웠다. 쫄보라서 이후로도 한두 번 더 하고서야 오토빌레이를 믿게 됐다.

외벽으로 나오니 성훈이가 10a루트를 막 걸고 내려오고 있었다. 줄리엔이 후등으로 올라가보고는 키가 큰 사람이 루트세팅을 한 것 같다더니 과연 그 말이 맞았다. 줄리엔보다도 키가 작은 나는 거의 몸을 던지다시피 해야만 다음 홀드를 잡을 수 있는 구간이 많았다. 한쪽 팔과 다리에만 힘을 실은 채로 반대 손으로 다음 홀드를 잡아야 하는 무브가 몇 번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이 다음 자연암벽에 갔을 때 정확히 동일한 무브를 하게 됐다. 지난번 알레 클라이밍에 갔다가 자운암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렇게 인공 암장에서 연습한 동작들을 자연에서 바로바로 적용하게 되는 게 신기하다. 윤수가 11a를 걸었다가, 유빈이가 바로 옆에 있는 루트를 걸다보니 링이 겹쳐서 아무도 못 해보고 줄을 내렸다. 그냥 끝내기는 아쉬워서 윤수가 10c를 하나 더 걸고 유빈이랑 내가 맛만 보고 내려왔다. 내가 안 할 줄 알고 유빈이가 퀵을 풀고 내려와서 내가 올라갈 때는 떨어지면 바닥을 칠 수 있어서 무서웠다. 그래서 발홀드도 손으로 열심히 잡고 올라갔는데 그 다음에 발홀드를 못 찾고 있으니까 윤수가 밟으라고 있는 발홀드를 손으로는 잡고 밟지는 않는다고 뭐라 했다. 너무 어려워서 바닥을 치지 않는 곳까지만 꾸역꾸역 올라간 다음에 바로 내려왔다.

괴물 신입 준아는 선등 서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더니 바로 외벽에서 5.9 선등을 섰다. 위험할 수 있으니 유빈이가 퀵 몇 개를 먼저 걸어주고 내려왔다. 윤수한테 속성으로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처음이다 보니 퀵 거는 방향을 자꾸 틀렸다. 한 번은 Z자로 걸려서 위험했는데 나도 선등을 안 서니까 이상하다는 것만 알았지 그렇게 걸린 건지도 몰랐다. 윤수가 옆에서 보고 알려줘서 바꿔 걸었다. 준아를 볼 때마다 도은이 생각이 나는데 준아는 제2의 도은이가 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얼마나 멋진 제1의 강준아로 자라는지 지켜볼 생각에 기대가 된다. 이번 RC에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이 윤수, 유빈, 준아인데 신입들이 열정과 실력이 모두 대단하다. 지금까지 내가 있던 산악부와는 사뭇 다르지만, 형님들한테 이야기로만 들었던 산악부의 전성기 시절을 다시 경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문 닫을 때까지 국립등산학교에서 운동을 하다가 장을 보러 속초 이마트에 갔다. 애들이 밥은 잘 챙겨먹고 있으려나 걱정했는데, 사먹기도 하고 장봐서 해먹기도 하면서 서울에 있던 나보다도 잘 먹고 있었던 것 같았다. 재료를 사서 차돌박이 우삼겹 숙주볶음을 해먹었는데, 윤수가 재료를 손질하고 내가 양념을 만들고 윤수, 유빈이가 후라이팬에 볶으니 금방 8인분이 만들어졌다. 술 동아리 소속 성훈이가 고른 맛있는 막걸리 3종까지 곁들이니 더 부러울 게 없었다. 윤수는 막걸리를 마시려다가 터미널에 민준이랑 연재를 데리러 가야 하는 게 생각나서 못 마셨다. 불쌍한 윤수... 밥을 먹고 나니 철의형님이랑 시한형님이 삼겹살을 사들고 오셨고, 범진형님도 서울에서 민규를 데리고 오리주물럭을 사오셨다. 윤수랑 같이 터미널에 애들을 데리러 갔더니 애들도 사람 얼굴 2개 크기는 될 듯 한 맘모스빵을 사왔다. 다들 우리가 굶고 있을까봐 걱정을 한 것 같다. 나는 차돌박이 우삼겹 숙주볶음을 이미 배터지도록 먹어서 삼겹살도 오리주물럭도 못 먹었다. 윤수가 다음날 등반팀을 짰는데,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나를 경원대길에 넣었다. 가라면 가야 하기는 하겠지만 갔던 길을 또 가고 싶지 않아서 싫은 티를 냈다. 자칫하면 윤수랑 나랑 서로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옆에서 형님들이 바로 눈치를 채고 형님들이 신입들 데리고 나 없이 경원대길 가도 괜찮다고 말해주셨다. 그 당시에 티는 안 냈지만, 그런 상황을 바로 감지하고 매끄럽게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주시는 걸 보고 정말 이게 어른이구나 싶었다.


2021/6/23(水) <4인의 절교길>

이 날도 비소식이 있었다. 사실 지난주에도 두 번 연속으로 외설악에 가서 개고생을 했고, 내가 없는 동안에는 애들이 외설악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외설악에 가는 게 별로 내키지는 않았다. 그래도 형님들까지 여럿이서 소공원을 지나 어프로치를 시작하니 또 그 나름대로 새롭고 즐거웠다. 외설악 어프로치는 계곡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비소식이 더 걱정이었는데 다행인지 어프로치를 하는 동안은 비가 내리지 않았다. 가장 어프로치가 짧은 경원대길로 시한, 범진형님과 준아, 정현이를 보내고, 우리팀은 나, 유빈, 민규, 정현이 이렇게 넷이서 4인의 우정길에 붙었다. 윤수는 줄리엔 생일바위를 위해 줄리엔, 성훈이, 민준이, 연재를 데리고 별을 따는 소년들로 갔다. 유빈이가 RC 첫날에 채현이 선등으로 4인의 우정길을 한 번 갔다 왔는데 그때 할 만 한 것 같아서 선등을 서겠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날은 물바위여서 난이도가 몇 단계는 올라간 상태였다. 유빈이가 첫 피치를 올라갈 때부터 비가 한 두방울 씩 떨어지다가 점점 굵어졌는데, 그래도 3피치까지 무사히 선등을 완료한 게 대견했다. 세 팀이 있는데 루트가 가깝고, 메아리가 쳐서 벽과 벽끼리 소통이 지나치게 잘 되기 때문에 우리는 하야 대신 다른 구호를 쓰자는 말이 나왔다. 유빈이가 화이짜?로 하자고 말했는데 내가 화이자로 알아들어서 더 알아듣기 쉬운 얀센을 쓰자고 했다. 그렇게 우리 팀 에코가 얀센이 되었는데, 이후에도 여러 팀이 근처에 있는 길을 갈 때 유용하게 잘 활용했다.

유빈이가 올라갈 때 비가 몇 방울씩 떨어지더니 내가 올라가려고 하니까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이게 맞나? 싶었지만 경원대 팀도 계속 등반하고 있는 것 같고 윤수 쪽에서도 특별한 연락이 없길래 다들 등반을 계속하려나보다 하고 올라갔다. 첫 피치는 쉬운 길이라는 게 느껴지는데, 비 때문에 홀드가 몇 개씩 생략되어 있는 기분이었다. 비만 아니면 이게 아주 잘 잡힐 것 같은데... 이게 아주 잘 밟힐 것 같은데... 싶지만 젖어있기 때문에 믿을 수 없어 버려야 하는 홀드가 많았다. 첫 볼트에서 턱으로 올라설 때 턱이 좁기는 한데 발을 거의 재밍하듯 넣을 수 있었다. 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 볼트에서도 손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왼쪽 작은 홀드를 잡으면 잘 잡히는데 위치가 허리쯤에 있고 오른손 홀드는 다 벙어리였다. 왼손 위치가 별로였지만 여기 의지해서 몸을 끌어올린 다음 오른 발을 좋은 데 딛고 올라섰다. 이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는 무난한 길이었다. 위쪽으로는 거의 걸어가다시피 가는 길이다. 다만 유빈이가 선등을 설 때 어디로 가는 건지 몰라서 길을 좀 헤맸다. 유빈이가 여기서 퀵을 하나 주웠는데, 이번 RC에 여기저기서 장비를 정말 많이 주웠다. 설악산은 장비 노다지인 것 같다...

 2피치에서도 비가 끊임없이 왔다. 비가 계속 와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손 잡을 데가 없었다. 그래서 거의 묘기를 부리는 수준으로 다리를 위로 올려서 제일 믿을 만 해 보이는 곳을 밟고 올라갔다. 비에 젖어서 손발이 다 사라져버려서 비에 안 젖었으면 잡을 수 있었을 것 같은 곳을 다 잡을 수가 없었다. 제일 튀어나와 있는 곳을 밟았는데도 미끄러워서 발이 터져서 깜짝 놀랐다. 올라가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갑자기 뭐가 아래로 빙빙 돌면서 떨어져서 길이를 보고 캠인 줄 알았는데 다 올라와서 생각해보니 내 스틱이었다. 가방에 제대로 걸어놨어야 하는데 괜찮겠지~하고 대충 끼워놨더니 빠져버렸다. 사람이 없는 쪽으로 떨어졌고 그나마 다른 장비가 아니고 내 스틱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더 조심해야지...

 기묘한 자세로 올라가다 보니 크고 동그랗게 생긴 튀어나온 바위가 있었다. 엄청 나쁘지는 않아서 그걸 잡고 몸을 끌어올릴 수는 있는데 밟을 데가 없어서 오른쪽 바위를 스태밍 하듯이 써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비에 쫄딱 젖은 바위에 스태밍이라니... 비 오는데 스태밍했다가는 발이 싹싹 밀릴 것 같아서 그냥 손으로 몸을 끌어올려서 튀어나온 바위에 앉아버렸다. 그 다음은 하는 수 없이 오른발로 최대한 힘을 실어서 스태밍을 하고 엉덩이를 대고 앉아있던 곳에 왼발을 올려서 일어섰다. 그렇게 일어서니까 오른쪽에 잡을 수 있는 게 좀 있었다. 비만 아니었으면 발을 잘 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비가 오니까 발을 쓸 수가 없어서 모든 걸 팔 힘으로 하게 됐다. 발을 믿을 수가 없어서 손으로 찍어 누르는 힘을 쓰든 좋은 홀드를 뜯어 당기는 힘을 쓰든 손 밖에 쓸 수가 없다. 올라가면서 이건 진짜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유빈이가 보고서 써야 되니까 3피치까지는 가고 싶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선등자가 간다는데 후등자가 따라가야지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나... 비가 오는데 다들 눈치싸움을 하는 건지 아무도 내려가자는 말을 안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2피치를 올라가면서 이건 절대로 4인의 우정길이 될 수 없고 4인의 절교길이라고 생각했다. 비 때문에 없던 친구라도 만들어서 절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정이 생길 수가 없는 길이다. 올라와서 카톡을 보니까 윤수네 팀은 진작에 도망갔다고 했다. 안 그래도 왜 다른 팀에서는 하강한다는 말을 안 하나 의아해하고 있었는데 말도 안 하고 자기들끼리 도망간 거였다. 이 소통의 부재를 어쩌면 좋나... 뒤를 돌아보니 경원대길은 내려갈 생각이 없는 것 같고, 별 따는 소년들 팀도 줄리엔 생일바위라 안 내려가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 우리 팀에서 먼저 내려가자는 말을 꺼내야 하는 건가 고민하고 있었는데 웬 걸... 그 팀에는 연재도 있었고 인원도 가장 많아서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기는 하다.

 유빈이가 내 빌레이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항상 내가 주는 것보다 자일을 넉넉하게 주기를 바란다. 최대한 풀어주기는 하는데 그래도 내가 선등이라면?하는 생각에 감정이입이 돼서 유빈이가 원하는 만큼 주지를 못 한다. 이번에도 자꾸 줄 풀어달라고 하면서 갔는데, 줄 달라는 말을 ‘자일 업’이라고 했다. 그래서 민규가 완료한 걸로 알아듣고 우리가 아래서 “완료?”이러니까 유빈이가 다급하게 아니라고 했다. 선등 서다가 완료 안 했는데 밑에서 완료라고 알아들은 걸 알면 얼마나 무서울까ㅋㅋㅋ 우리가 잘 못 알아들으니까 ‘아니’라고 하는 게 ‘완료’라고 들리는 건가?하고 급하게 ‘완료 아니야!!’라고 했다고 한다. 유빈이가 올라가면서 캠을 설치하는데 우리 쪽을 바라보고 앉아서는 위에서 아래로 캠을 내리 꽂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걱정돼서 캠 치는 법 아냐고 물어봤다. 나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떨어졌을 때 방향을 잘 생각하면서 치라고 했더니 캠 안 쓰고 슬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고는 확보를 하고 올라갔다. 올라가면서 보니까 촉스톤에 슬링으로 아주 야무지게 확보를 해놨다. 슬링이 너무 야무지게 걸려서 빼느라 고생했다.

 3피치 시작은 확보점에서 한 번 턱을 넘어서 올라가야 되는데 비도 오고 그래서... 체인을 잡고 올라서서 시작했다. 여기를 넘어서 살짝 걸어가니까 확보점에서는 안 보이던 곳에 나무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놨나 싶을 정도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 나무가 없었으면 뜀바위가 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나무 덕에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나서 바로 앞에 있는 벽에 붙을 수 있었다. 4인의 우정길은 인수봉이나 여러 길의 악명 높은 구간들(인수B 항아리크랙이나 의대길 쌍크랙 등등...)과는 다르게 손을 일단 넣어보면 대체로 잘 잡혀서 다행이었다. 유빈이가 촉스톤에 슬링으로 확보해놓은 곳은 위에 있는 바위가 우산처럼 막아주고 있어서 딱 그 부분만 바위가 안 젖어 있었다. 왼쪽은 비에 젖은 슬랩이어서 어떻게든 오른쪽으로 올라오려고 침니로 비비면서 올라갔다.

 그 위로 좀 올라오니까 유빈이가 멋진 자세를 했던 곳이 나왔다. 가보니까 왜 그런 자세를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곳이었다. 왼쪽 벽에 괜찮게 잡히는 곳이 한 군데 정도 있어서 그걸 잡고 몸을 끌어올리면 왼쪽에는 더 이상 손이 없고 오른손을 넓게 뻗어야 홀드가 하나 있다. 그래서 바로 오른발을 뻗어서 오른쪽 벽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가운데에서 큰 바위가 몸을 밀어내고 있어서 왼손을 잡은 채로 오른발을 멋지게 뻗어서 오른쪽 바위를 밟아야 한다. 그래서 다리를 쫙 벌리는 멋진 자세가 만들어진다. 밟을 곳이 있어서 스태밍은 안 해도 되지만 딱 스태밍 하는 것 같은 자세가 만들어진다. 그 위로는 크게 어렵지 않았고, 올라오고 나니까 그래도 3피치까지 해서 기분이 좋았다. 하강도 유빈이가 맡아서 했는데 나무가 많아서 걸릴 것 같다면서 총 3번에 걸쳐서 하강했다. 덕분에 한 번도 줄이 걸리는 일 없이 잘 내려왔다. 지난번에 왔을 때 줄이 걸려서 채현이가 다시 등반을 해야 했던 기억 때문에 더 신중을 기한 것 같다.

 정현이는 2피치에서, 민규는 3피치에서 좀 크게 미끄러졌는데, 다 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리 한 번 와본 길이라지만 이런 상황에서 미끄러지지도 않고 선등을 선 유빈이가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애들은 좀 불쌍했다. 4피치를 갈지 말지 고민하다가 여러모로 내려가는 게 맞는 것 같아서 내려왔는데, 막상 하강하기 시작하니까 비가 잦아들고 바위가 실시간으로 말라가는 게 느껴져서 조금 아쉬웠다. 해가 지기 전에 하산을 했더니 등산로에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매번 남들 없는 새벽에 갔다가 사람들 다 떠난 시간에 내려와서 몰랐는데 여기도 나름 인기 있는 등산로였던 것이다. 애들이 커피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카페에 갔는데 엄청 멋진 카페였다. 귀한 곳에 누추한 것들이 들어가서 우리 스스로 좀 민망해했다. 유빈이랑 같이 차를 타고 줄리엔을 원통 터미널에 태워다줬는데 이게 줄리엔이 오스트리아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거였다. 줄리엔 행복하고 담에 한국에 올 때는 꼭 넘버 따라! 갑자기 얘기가 산으로 가는데 총평을 하자면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쉬운 길이어서 그런지 산뜻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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