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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보고
  
작성자 김신혜        
작성일 2021/07/03 (토)
분 류 YM 산행
등반일자 2021/06/18
장소,코스 설악산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등반대원 16이경태(T), 13김신혜(S), 19정성윤/17남윤수(T). 19조유빈(S), 21강준아
ㆍ추천: 0  ㆍ조회: 32      
2021 집중RC 6/18 김신혜
2021/6/18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일어나기로 한 4시가 돼서 알람이 울렸다. 자는 애들이 있어서 알람을 바로 끄고 소파에 계속 누워있었다. 밖에 인기척이 없어서 아무도 안 일어나나...하면서 기다렸다. 5분쯤 지났으려나 윤수가 방에 들어왔다. 방 안에는 일어나야 할 사람이 유빈이랑 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내 바로 옆에서 자고 있던 준아가 일어났다. 다시 자라고 하니까 자기도 가고 싶다고 했다. 총 다섯 명이라 차에 자리가 없어서 갈 거면 채현이한테 태워다줄 수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고 했다. 채현이가 자다가 이 말을 듣고 갈 거면 태워다 주겠다고 했다. 윤수가 그냥 차 한 대로 가자고 해서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고 별장을 나섰다. 전날과 똑같이 소공원으로 가서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중간에 오른쪽 길로 빠져야 하는데 작년에 왔다는 태풍 때문에 길이 사라져서 윤수랑 경태가 길을 헤맸다. 가던 길을 돌아와서 윤수가 짐을 놔두고 길을 찾으러 가고, 그쪽 길이 맞는 것 같다고 해서 따라갔다. 많이 가파른 길이 나와서 윤수가 먼저 올라가고 우리는 아래서 기다렸는데 윤수 쪽에서 몇 번 큰 낙석이 떨어져서 죽을뻔 했다. 다시 아래로 내려와서 어찌어찌 가다보니 바위가 나왔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1피치는 아니었지만 이쪽으로 가다보면 만날 것 같아서 여기서 시작하기로 했다. 길을 많이 헤매서 8시쯤 돼서 등반을 시작했다.

 1피치는 울퉁불퉁한 슬랩?처럼 생겼는데, 쉬울 것 같아서 유빈이랑 나는 각각 준아, 성윤이랑 연등으로 가기로 했다. 유빈이가 먼저 올라가면서 등산화를 신고 갔는데 너무 힘들어 보였다. 유빈이가 자꾸 등산화로 올만 하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이미 유빈이의 몸이 진실을 말해주고 있어서 빠르게 암벽화로 갈아 신었다. 생각보다는 손홀드가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경사가 세지 않아서 올라갈만 했다. 연등으로 가니까 선등을 서는 기분이 들었다. 2피치는 어려운 무브가 하나 있어서 성윤이 먼저 보낸 다음 내가 올라갔다. 쉬운 길을 올라가다보면 중간에 각이 센 크럭스가 나온다. 오른쪽 아래에 사선으로 발을 댈 수 있는 부분이 두 군데 정도 있어서 거기에 발을 대고 아예 턱 위로 올라서서 위로 손을 뻗으면 괜찮은 홀드가 하나 있다. 그 바로 위에도 좀 더 넓은 손홀드가 하나 더 있고, 이 홀드를 잡고나면 오른발이 사라져서 틈에 대충 재밍을 했다. 먼저 올라간 준아랑 성윤이가 조금 힘들어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 넘어가길래 만만하게 보고 재밍을 제대로 안 했는데 막상 손홀드를 잡아보니 그렇게 좋지 않았다. 그래서 슬쩍 끼워놨던 오른발이 터져서 약간 당황했다. 손홀드가 방향 때문에 별로 좋지 않았지만 발이 터져버려서 일단 꽉 잡고 일어났다. 좀 더 위로 올라오니까 벽 앞에 얇은 나무가 있는데 자일이 그 안쪽으로 통과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안으로 들어오려니까 나무 틈에 가방이 걸려서 넘어오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사야 하는 장비에 등반배낭이 추가되었다...

 3피치는 엄청 짧았는데, 성윤이랑 연등으로 가면서 성윤이가 나한테 코치를 해줬다. 시작할 때도 발 어떻게 올리라고 알려주고, 올라가다가 왼쪽으로 가더니 안 좋은 것 같다고 ‘언니, 왼쪽으로 가지 마요...’라고 알려줘서 성윤이 말 듣고 오른쪽으로 바로 넘어갔다. 왼쪽으로 가면 손홀드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성윤이 따라서 왼쪽 길로 가려고 했는데 길에 물이 고여 있었다. 물은 죽어도 밟기 싫어서 그냥 오른쪽도 완만해보여서 돌아서 올라갔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잡기 좋아 보이는데 죽어있는 함정 나무도 있었다. 3피치 끝나고 윤수한테 무전이 와서 쉬우니까 우리팀은 엔자일렌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어차피 윤수가 올라가 있으니까 윤수 팀까지 해서 남아있는 5명이 다 연등으로 윤수 빌레이로 올라가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까 좋은 생각이라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따닥따닥 붙어서 올라갔는데 앞사람 엉덩이에 얼굴을 박고 가는 꼴이었다. 올라가는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너무 귀여웠다. 성윤이 다음에 내가 갔는데 쓰려는 홀드가 겹쳐서 자리싸움 하면서 올라갔다. 내가 손으로 잡은 데를 성윤이가 밟고 싶어서 나보고 순서 지키라고 뭐라 했다. ㅋㅋ 윤수가 위에서 우리 다섯 명이 한 번에 올라오는 사진을 찍어줬는데 너무 옹기종기 있어서 다 같이 사진에 나오기도 힘들었다. 이날 전체 등반 중에 이 구간이 제일 재밌었던 것 같다.

 여기를 넘어왔더니 드디어 쌍볼트가 나타났다. 피치 개념이 애매해지긴 했지만 애들이 여기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의 4피치 정도 되는 것 같다고 했다. 먼저 간 애들이 뜀바위가 있다고 겁주면서 갔는데, 가보니까 겁줄만 한 곳은 아니었다. 성윤이랑 나 사이에 줄 간격이 좀 짧아서 성윤이가 뛰다가 내가 딸려갈 것 같아서 조금 아래로 내려와서 앉아서 성윤이가 뛰는 걸 기다렸다. 성윤이는 무릎을 희생해서 건너갔는데 보니까 다리를 좀 길게 뻗으면 안 뛰고도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다리를 벌려서 넘기에는 손잡을 데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살짝 뛰었더니 넘을 수 있었다. 둘이 같이 가니까 퀵 회수도 내가 대신 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에 큰 바위가 나왔는데, 손으로 칸테처럼 잡고 넘어가면 되고 손도 엄청 좋았다. 원래 암벽등반할 때 이 정도 바위는 다 하는 건데 너무 쉬운 것만 하다가 이런 구간이 나오니까 성윤이가 무서워했다. 도착했더니 윤수가 아예 다른 쪽 벽에 넘어가있고, 내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사진을 보면서 상상하던 딱 그 풍경이 펼쳐졌다. 수직이 아니라 수평에 가깝게 가는 구간...? 우리가 있는 곳에도 볼트가 있긴 했는데, 경태 말로는 전에는 윤수가 있는 쌍볼트까지 한 번에 가서 끊었다고 한다.

 4피치를 애매하게 끊어서 경태랑 윤수가 우리 팀은 5피치까지 한 번에 올라오라고 했다. 계속 연등으로 오거나 짧은 길만 와서 자일을 하나만 쓰고 있었는데 애들이 자일 길이가 된다고 했다. 아무리 봐도 30미터가 훨씬 넘어 보이는데 그렇게 말해서 의아했는데 연등을 하라는 뜻이었다. 어려워보여서 연등 얘기를 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고민하다가 자일 꺼내기 귀찮으니까 그냥 연등으로 가기로 했다. 성윤이한테 내가 떨어지면 너도 떨어지는 거라고 말하고 시작했다. 오른쪽에 있는 튀어나온 바위를 왼쪽으로 돌아서 넘어가야 되는데 경태가 가면서 알려준 대로 아래쪽을 잡고 넘었더니 갈만 했다. 기다릴 때는 시야에 가려져서 안 보였는데 여기를 넘어가니까 일반적인 어프로치 길이나 하산길보다도 쉬운 곳이 나왔다. 조금 걸어가면 윤수 팀이 있었던 독립적인 봉우리 같은 곳의 시작 부분에 닿는다. 여기서부터 어려워 보이는데 쌍볼트가 있어서 그냥 여기서 확보하고 빌레이 따로 봐달라고 해서 올라갈까 고민했다. 그런데 길이 연등으로 가든 빌레이 받아서 가든 어차피 떨어지면 펜듈럼 칠 것 같아서 그냥 성윤이랑 같이 갔다. 시작할 때 경사가 갑자기 세지면서 손홀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나마 발을 댈 수 있는 크랙이 하나 있어서 거기에 왼발을 디뎠다. 성윤이는 잘 갔는데 내가 가보니까 왼손이 완전 벙어리라 잘 안 잡혀서 깜짝 놀랐다. 그래서 성윤이가 나를 기다려줬다. 성윤이가 홈에다가 왼발을 디디고 간 곳에서 나는 오른쪽 벽을 미는 힘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했는데 결국은 그 홈을 써야 했다. 더 가다가 오른쪽으로 턱을 넘어서 붙어야 하는 곳이 나왔는데 성윤이가 무서워서 말 타듯이 걸터앉아서 넘어갔다. 나는 그냥 위에서 밑으로 찍어 누르는 힘으로 넘어갔다. 많이 어려운 길은 아니었지만 떨어지면 펜듈럼을 크게 칠 것 같아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갔다. 연등으로 가니까 성윤이가 가는 걸 직관할 수 있었는데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다. 녹음으로 이걸 기록했더니 성윤이가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써달라고 했다.

 그 다음이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6피치인 줄 알았는데 넘어왔더니 애들이 7피치였다고 알려줬다. 약간 봉우리 같은 곳에서 쌍볼트에 매달려서 대기했는데, 윤수가 코앞에 보이는데 애들이 등반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준아가 한참을 사라져서 안 보여서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했는데 가보니까 우리 시야에서 가려진 곳에서 위아래로 왔다갔다 요동치면서 가는 길이었다. 어쩐지 경태 빌레이 볼 때 줄을 자꾸 달라고 하긴 하는데 가는 건지 안 가는 건지도 모르겠고, 한 번 경태가 위로 올라와서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아래로 쏙 들어가서 안 나와서 뭐지?했는데 가보니까 다 이해가 됐다. 시작하기 전에 연등할지 안 할지 결정하려고 애들한테 난이도가 어떻게 되냐고 물어봤다. 말도 안 되게 5.1이라고 해서 신뢰도가 확 떨어져서 정말 어려운 길인가 싶었다. 저렇게 말하는 걸 보니 5.11 정도는 되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다. 여기가 7피치인 줄 알았으면 연등을 안 했을텐데, 6피치라고 생각하고 시간을 계산해보니까 촉박할 것 같아서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연등을 하기로 한 거였다. 애들이 성윤이랑 나랑 5m 정도 간격을 두고 줄을 묶으라고 했는데 무서워서 치사하게 3m 정도 간격을 두고 묶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데 좀 칼날처럼 생겨서 양옆으로 떨어질 수 있을 것 같이 무섭게 생겼다. 손은 다 좋았다. 마지막 쯤에 성윤이가 왼쪽으로 간 곳에서 나는 오른쪽으로 갔는데 오른쪽으로 갔더니 밟을 데가 없어서 자세를 많이 낮춰서 오른쪽에 튀어나와 있는 좋은 홀드를 잡았다. 내가 발홀드 어딨냐고 하니까 경태가 TC pro 신었으니까 전부 다 발홀드라고 했다. 내려오니까 쉴 수 있는 공간이 나와서 여기서 모닝빵을 먹으면서 쉬었다. 약 10시간 후에 이때 오래 쉰 걸 피눈물 나게 후회하게 될 줄은 모른 채...

 여유롭게 쉬다가 걸어서 8피치 시작점으로 이동했다. 8피치에서 10피치는 이전 구간들과는 다르게 한시길에서 가장 암벽 같이 생긴 곳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윤수가 먼저 올라가고 그 다음 경태가 출발했다. 위쪽에서 애들이 중간에 남의 캠이 있으니까 뺄 수 있으면 빼고 아니면 놔두고 오라고 했다. 윤수랑 경태가 쉽지 않다고 판단했는지 이번에는 연등으로 오지 말고 자일을 한 동 더 꺼내서 따로 오라고 했다. 성윤이가 자일업 하는 걸 기다리다가 시작 부분은 완만해 보이고, 또 조금 올라가면 쌍볼트도 하나 있길래 시간을 아끼려고 거기까지 그냥 걸어가서 기다렸다. 그래서 출발한다고 말한 다음 성윤이가 늘어진 자일을 빠르게 먹느라 조금 고생했을 거다. 그 위로도 쉬운 길이어서 성윤이가 줄을 먹는 속도에 맞춰서 기다리면서 올라갔다. 초반 부분은 그냥 일반적인 어프로치길처럼 생겼다. 그렇게 올라오다보면 침니라 불러야 하는지 크랙이라 불러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각이 엄청 선 크럭스가 나온다. 여기가 캠의 무덤이었다. 두 개가 있었는데 둘 다 못 빼고 캠에 연결된 퀵만 하나 챙겼다. 오른쪽에 덧장바위 같은 손홀드가 있어서 그걸 잡고 그냥 힘으로 끌어 올렸다. 뭔가 약간 스태밍하는듯한 자세가 됐던 것 같다. 한 동작 올라서면 오른손으로 직육면체 같이 생긴 바위가 잡히는데, 잡기에 엄청 좋지가 않고 발이 없어서 발재밍을 했다. 벽이 많이 서있어서 몸이 좀 뒤로 기울게 돼서 힘이 많이 필요한 동작이었다. 애들이 올라가는 걸 보고 걱정했던 것보다는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9피치에서 윤수네 팀은 왼쪽으로 올라가고 우리 팀은 약간 오른쪽에서 시작했다. 경태가 올라가면서 “어, 시작부터 쉽지 않은데?”라고 말했는데 성윤이가 별로 어렵지 않게 통과해서 갈만 하겠구나 생각했다. 성윤이가 시작 부분을 지나면서 나한테 왼쪽에 손이 있다고 알려주고 갔다. 내 차례가 돼서 시작하는데, 막상 붙으니까 첫 동작이 말도 안 되게 어려웠다. 일단 발도 너무 불안하고 손이 그냥 없었다. 손재밍이 가능할 것 같은 얇은 크랙이 나있는데, 재밍을 안 하고 그냥 잡으면 완전 벙어리였다. 벙어리 홀드를 잡고 가면 손이 터질 것 같아서 그냥 손재밍을 해버릴까 하다가 후등인데 손재밍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 하는 것으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발도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좋지도 않은 홀드를 잡고 버티니까 힘이 쭉쭉 빠졌다. 성윤이한테 텐션 달라고 할지 진심 백만 번 고민했다... 그래도 텐션 외치느니 한 번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해봤다. 최대한 왼손으로 잡고 올라가보려고 눈물겹게 열심히 잡았는데 손이 밀리려고 했다. 잘 보니까 왼쪽에 발 올릴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못 보고 조금 더 올라와서 허벅지 재밍을 해버린 상태였다. 이 발만 잘 밟았어도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았을 것 같은데... 손이 거의 없는 상태인데 여기서 왼발을 좋은 데 올리려고 내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허벅지를 뺐다가는 바위에 걸리는 곳이 전부 사라져서 바로 떨어질 것 같아서 고민이 됐다. 왼쪽의 두꺼운 벙어리 홀드를 아주 잠깐 동안은 잡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빠르게 재밍한 다리를 빼서 왼발을 바로 올렸다. 그렇게 올라오니까 오른발을 올릴 수 있는 턱이 있었다. 엄청 좋지는 않았지만 그게 어디야... 이 모든 동작을 마치는 동안 성윤이가 좋다고 했던 왼손 홀드가 보이지 않아서 더 올라오고 나서야 성윤이가 말한 게 이건가...했는데 아니었다. 다 올라와서 시작이 너무 어려웠다고 말하니까 제일 처음 시작 부분에 왼손에 좋은 홀드가 있다고 알려준 건데 왜 자기 말 안 듣고 어렵게 올라오냐고 했다.

 이게 글로는 표현이 안 되는데 진짜 여기서 멘탈이 거의 다 나갔다. 성윤이가 시작 부분은 나름 쉽게 올라가고, 오히려 더 위쪽에서 올라가는 데 시간이 한참 걸렸는데, 그래서 ‘저 윗부분은 여기보다 대체 얼마나 어려운 거지?’라는 생각에 겁을 먹었다. 막상 가보니까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는데 겁을 먹어서 애들한테 어디로 올라가야 되는지 계속 물어보면서 갔다. 위에서 내가 어디 있는지 잘 안 보여서 먼저 올라간 애들마다 말이 달라서 사실 큰 도움이 안 되기는 했다. 좋은 나무가 있어서 발로 밟고 서서 물어보니까 경태가 고도감이 있어도 아예 절벽 쪽으로 나가서 가면 잡을 데가 많다고 알려줬다. 퀵을 회수하고 왼쪽에 튀어나온 부분을 타고 가니까 쉬웠다. 그래서 ‘아, 여기는 쉽고 그럼 이 다음이 어렵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사실 확보점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어서 다 끝나고 확보하러 가는 게 제일 힘들었다. ㅋㅋ 위에서 애들이 힘들게 올라간 구간이 나한테 쉬웠던 걸 보면, 첫 동작이 어려웠던 게 아니라 그냥 멍청해서 홀드 잘 못 찾아서 고생한 것 같다.

 마지막 피치도 윤수네는 왼쪽, 우리는 오른쪽으로 갔다. 시작부터 턱을 넘게 돼서 앞서 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가는지 전혀 볼 수 없었다. 가보니까 길이가 조금 길 뿐 여기도 그냥 무난한 길이었다. 등반하는 사진을 하나도 안 찍은 게 생각나서 위에다가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니까 성윤이가 빌레이 보다가 사진을 찍어줬다. 맨 마지막이 힘을 좀 써야 돼서 애들한테는 약간 힘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힘이 남아서 그냥 쉽게 올라갔다. 10피치가 끝난 다음 쉬운 구간을 걸어서 이동해야 되는데 아무리 쉽다고 해도 그 고도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가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올라간 윤수한테 남은 5명이 한 번에 연등으로 올라갈 테니까 자일을 내려달라고 했다. 자일을 내리는 과정에서 나무에 자꾸 줄이 걸려서 시간이 또 지체됐다. 그래서 내가 그냥 빌레이 없이 올라가서 나무에 걸린 걸 풀고 계속 올라갔다. 이쪽에서 바로 하강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왼쪽 바위를 올라타고 능선을 따라 한참 걸어가야 하강 포인트가 나왔다. 혹시 모르니 10m 정도 간격을 두고 자일을 묶어서 엔자일렌으로 갔다. 이렇게 가니까 자일이 늘어져서 거슬리거나, 속도가 달라서 자일이 모자르는 등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았다.

 하강 포인트가 별로 믿을 만 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아서 하강하는 사람들만 내려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위에서 대기했다. 준아가 전날 하강하면서 사고가 날 뻔 했다고 했는데 그래서인지 굉장히 천천히 내려갔다. 여기서 시간이 또 한 번 많이 지체됐다. 나는 다음날 아침 일정이 있어서 늦어도 밤 10시에는 서울 가는 차를 타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하강을 시작도 못 하고 벌써 7시가 다 돼서 점점 마음이 급해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윤수 말을 듣고 다시 확인해보니 시외버스는 10시가 막차인데 고속버스는 10시 40분까지 차가 있었다. 세 번에 걸쳐 하강을 마치고 하산을 시작할 때 시간이 거의 8시였다. 덕분에 해가 지면서 붉게 물든 하늘을 볼 수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악몽 같은 어둠의 하산길이 펼쳐졌다. 전날 경원대길에서 하산하면서 겪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난이도 극강의 하산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다 해까지 져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어두워서 길을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거의 다 내려왔을 때 쯤 넓은 곳에서 한 번 쉬었는데, 그 다음 계곡을 건너다가 물에 발이 빠졌다. 극도로 화가 난 상태에서 걸어가는데 윤수가 뭐에 홀렸는지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한 바퀴를 빙 돌았다. 다들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윤수는 그렇게 걷는 동안 뭐가 잘못됐는지 몰랐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이 산속에서 길을 잃는구나 싶었다. 여럿이었으니 망정이지 윤수 혼자였으면 밤새 같은 곳을 빙빙 돌았을 것 같아서 무슨 영화 같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10시 20분 정도에 하산을 마치니 사방이 캄캄하고 소공원엔 아무도 없었다. 다 같이 헤드랜턴을 끄고 하늘을 보니 쏟아질 듯 많은 별이 보였다. 시간은 늦었지만 잔치집 식혜를 포기할 수는 없어서 경태랑 성윤이를 기다리면서 자판기에서 잔치집 식혜를 뽑아 먹었다. 유빈이는 RC 기간 내내 외설악 등반을 마칠 때마다 잔치집 식혜를 먹었는데 RC가 끝나는 날까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을 끝내고 먹은 식혜 맛을 능가하는 날이 없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장장 2시간 반에 걸친 어둠 속 너덜지대 하산을 마치고 마신 식혜니까 식혜가 아니라 뭘 먹었어도 다시 먹었을 때 그날보다 맛있기는 힘들었을 거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버스를 놓칠 것 같아서 다음날 수업을 취소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윤수가 자기가 120km/h로 밟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화장실 가겠다는 성윤이도 못 가게 하고 차에 타서 미친 듯이 달려 버스 출발 시간을 3분 정도 남기고 속초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먹은 시리얼 한 그릇과 행동식 조금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어서 배가 고팠었는데, 버스에 앉으니 그 배고픔을 몇 배는 능가하는 피곤함이 몰려와서 배고프단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이었다.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갔는데, 자취를 하느라 집에 없어야 하는 여동생이 집에 와있었다.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거나 왜 왔냐고 물어볼 기운조차 없어서 짐도 안 풀고 씻지도 않고 바로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이날 하산을 하면서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진지하게 윤수한테 집중RC를 이대로 진행하는 것을 고려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 날도 신입이 있기는 했지만 다 잘하는 애들이었고, 윤수, 경태, 나 이렇게 셋이서 애들을 끌고 시간을 아끼려고 쉬운 구간에서는 최대한 연등을 하면서 올라갔는데도 이렇게 늦어졌는데, 앞으로 신입이 더 많은 날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신입이 많아지면 어쩔 수 없이 등반 시간이 길어질 거고, 그로 인해서 이날처럼 하산할 때 해가 져버리면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 인수 야영장이었다면 하산길이 나쁘지 않고 길이도 짧으니까 우리가 케어할 수 있지만 외설악은 이렇게 다니다가는 정말 큰 사고가 나겠다 싶었다. 결과적으로는 아무 문제없이 RC가 끝났지만, 이날 우리가 했던 행동은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다시 신입들을 데리고 외설악에 가게 된다면 하강이나 하산 등 모든 부분에서 시간이 무한히 지체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코스를 완료하는 것보다는 넉넉한 시간을 남겨두고 탈출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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