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5 북한산 백운슬랩-17 김지원
이번에는 돈이 없던 차에 이 산행까지 하면 환급을 받을 수 있대서 충동적으로 갔다. 아침에는 너무 졸려서 약간 후회했다. 하… 더 큰 후회는 암장까지 올라가면서 였다. 나의 충동적인 산행을 벌하려는 것인지 어프로치가 정말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씩씩하게 올라갔지 안그랬으면 벌써 굴러서 내려갔을 것이다.
도착하니 그곳은 또 슬랩이었다. 또 첫 산행을 까끌까끌하고 경사진 슬랩에서 맞이한 나로서는 아주 반가운 지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저번보다 경사가 완만해서 재미가 없었다. 또 짧기도 해서 시작한지 두 달 된 주제에 그러면 안되지만 조금 시시했다. 그래서 더 재밌어 보이는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오른쪽으로 가 보니 점점 경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씩 도장깨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다 할 만 했다. 내가 어릴 때 시작했으면 아주 선수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도 해 보았다. 나중에 내 딸이 내 신체를 닮았다면 나중에 키 다 크고 나서 한 번 시켜보아야겠다. 그 전에 하면 키가 안 클 것 같으니.
마지막에 엄청 길고 평평한 루트를 처음 보는 선생님께서 거셨다. 그걸 하면 아주 재밌을 것 같아서 꽤 오래 기다렸다. 볼 때는 몰랐는데 올라가니 정말 평평하고 가파른 바위였다. 누가 인위적으로 만든 골이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떨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떨어지기 싫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발 디딜 곳, 손 잡을 곳을 신중하게 보았다. 살면서 이렇게 집중한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수능 때도 나는 밥 먹으러 갔었는데 말이다. 목숨이 달려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산을 가지 않았을 때에는 몰랐는데 슬랩이 더 재미있다. 보기에는 지난번에 갔던 곳처럼 울퉁불퉁한 바위를 올라가는 것이 더 재미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 보니 그러기엔 내가 힘이 많이 딸려서 슬랩이나, 홀드가 좋고 가파른 바위를 타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중간에 빌레이를 하는데 손이 얼어서 줄 잡고 등반자 내려주는게 더 쉬웠다. 감각이 없었다. 슬랩이 완만해서 사람들이 빨리 올라가니까 줄을 혼자 당기는게 팔이 아팠다 역시 운동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북한산은 오랜만에 갔는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서울의 40대 이상 인구는 전부 북한산에 모인 것 같았다. 그런데 암장에는 우리뿐이어서 신기했다. 자연암벽이 재밌어서 더 가고 싶지만, 취준과 시험으로 인해 세 번째인 이번이 올해 마지막 산행이었다. 다음에 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러려면 내가 취준에 실패하고 한 학기를 더 다닌다는 소리니 그건 싫다. 취업하고 또 갈 수 있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장갑을 꼭 끼고 신발을 더 타이트한 것을 신어야 할 것 같다.
산행방 메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