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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imbing reports
산행 보고
  
작성자 김신혜        
작성일 2022/06/20 (월)
분 류 OM 산행
등반일자 2022/06/18
장소,코스 인수B
등반대원 서정환(T), 이창근(S), 강지희, 김신혜(L)
ㆍ추천: 0  ㆍ조회: 351      
2022/06/18 인수B
  사실 매달 있는 OB 산행인 줄 알고 창근오빠, 정환오빠와 함께 18일 산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홈커밍데이 뒤풀이에서 정환오빠와 나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아주 Young한 OB 지희까지 꼬드겨서 같이 가기로 했다. 그렇게 평범한 산행일 줄 알았건만... 사실은 넷째주 OB 산행과도 별개의 산행이었고, 출발 시간도 무려 새벽 3시 10분 삼각지역 픽업이었다. (녹두는 무려 30분 더 일찍!) 지희와 나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18일 산행'에서 거짓말인 부분이 없었던 건 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랐다. 설상가상으로 당일 새벽부터 비 예보가 있었다. 단톡방에 여쭤보니 돌아온 건 비가 오면 변하는 건 바위에서 물바위가 되는 것뿐이라는 대답이었다.

 저녁에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배낭에 김장 봉투를 넣고 침낭부터 보온을 위한 옷과 갈아입을 옷, 속옷, 양말 등을 철저하게 챙겼다. 밤 10시에 침대에 눕고 새벽 2시쯤 눈을 떴는데 빗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걸 감지했다. 부랴부랴 일기예보를 확인해보니 비 예보가 미뤄졌다. 살면서 가장 날씨를 많이 검색해본 일주일이었던 것 같다. 삼각지역으로 가서 창근오빠 차를 타고 아침으로 싸온 쌀 식빵과 우유를 먹으며 도선사 입구에 도착했다. 일출 산행을 온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의외로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도 간신히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우리와 동시에 도착한 산행팀이 있었는데 서로를 보며 신기해했다. 어차피 다시 내려와야 하니까 내 가방에 있던 침낭과 옷 등 무거운 것들은 모조리 빼서 차에 두고 정비를 한 뒤 산행을 시작했다. 사실 조금 잘못된 생각이었던 게, 새벽에 날씨가 습하고 더워서 반팔에 얇은 바람막이 하나만 챙겨갔는데 막상 올라가니 비도 조금씩 오고 날씨가 추워져서 대기하는 동안 계속 추위에 떨어야 했다.

 조금 올라가다보니 하늘이 푸른빛으로 변하면서 해드랜턴이 필요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루재에 도착했을 때도 해가 뜨지는 않았지만 꽤나 밝아졌는데 안개 때문인지 인수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슬랩을 훨씬 지나서 인수B 고전 1피치 시작점에 도착했다. 여기는 총산 대장일 때 야영장에서 술을 죽도록 먹고 다음날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간신히 등반을 했던 기억이 있는 곳이다. 그 한 번을 제외하고는 와본 적이 없어서 시작 포인트가 어딘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걸어서 많이 올라가야 했다. 나는 라스트로 가게 되어, 대체로 구름에 가려져 있기는 했지만 해가 점차 뜨면서 날이 밝아지는 걸 구경했다. 바람막이를 꺼내 입고 모자까지 쓰고 있었는데도 핫팩이 그리울만큼 추워서 추위에 떨면서 나무에 기대 졸았다.

 잠을 4시간도 채 못 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앞서 세 명이 올라가는 걸 중간중간 열심히 봤다. 먼저 등반하는 세 명을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길이 참 길다...라는 거였다. 지희가 올라가면서 자꾸 길을 잃어서 밑에서 알려줬는데, 막상 붙어보니까 비슷하게 생긴 크랙이 여기저기 나있고, 어디로 가도 다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이 생겨서 나도 길이 많이 헷갈렸다. 목표는 텐션을 받지 않는 거였는데, 목표는 달성했지만 정말 너무 힘들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다들 왼쪽 크랙으로 가던데 오른쪽 살짝 슬랩 같은 곳도 각도가 누워있는 것 같아서 그냥 그쪽으로 시작했다. 크랙 장갑을 꼈는데 크랙이 얇아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 재밍을 할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맨틀링 비슷한 동작을 하거나 할 때 크랙장갑 때문에 불편했다. 처음 1/3 정도는 중앙쯤에 있는 크랙을 따라서 올라왔고, 좋은 스탠스를 밟고 서서 전완근을 풀어주며 쉬었다. 여기서 오른쪽 크랙으로 넘어가는 게 조금 까다롭게 느껴졌는데 왼발로 거의 앉아서 믿고 넘어가니 할만 했다. 위로도 지루한 크랙이 계속됐는데, 거의 펌핑이 나기 직전이었지만, 후등이니까 지구력 훈련한다는 생각으로 텐션을 받지 않고 올라갔다.

 1피치 완료 지점에 도착하니 이미 세컨인 창근오빠까지 2피치를 완료한 상태였다. 지희는 내 빌레이를 마치자마자 등반을 시작해야 했다. 내가 빨리 올라온 편인데도 아무래도 1피치와 2피치 길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인수B 1피치(우리의 2피치)는 아마도 고독길과 비슷하게 내가 살면서 가장 많이 다녀본 루트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자신감이 있었다. 물론 마지막으로 갔던 게 이미 8년 정도 지났을 것 같기는 하지만... 지난주에 고독길 선등을 마친 후에 인수B 정도는 선등을 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크럭스인 항아리 크랙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가 그때 이걸 선등을 섰다고?'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일부 구간이 물에 젖어있던 것도 크긴 했지만 지금보다 체력도 몸도 훨씬 안 좋았던 2학년 때 어떻게 이 길을 선등을 선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말그대로 목숨을 내놓고 생일바위를 했던 것 같다.

 당시 생일바위 선등 서는 것이 내 가장 큰 고민이어서 산악부와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도 아직도 가끔 물어볼 정도로 나에게 심각한 일이었는데, 그 정도로 공포에 떠는 것이 맞았고,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는 선등을 서서는 안 됐다. 물론 그때 목숨을 거는 도박을 했고 도박에 성공했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산악회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정말이지 너무 무모했다. 만약 지금 내 후배 중에 당시의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말릴 거다. 실력이 되는 사람을 말리겠다는 게 아니라, 안 되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사람을 말리겠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내렸어야 하는 결정은 '목숨을 걸고 선등을 서서 정회원 자격을 갖추자'가 아니라 실력을 키워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설 때까지 기다리거나, 회칙 상 선등이 필수 요건이 아니니 횟수만 채워서 넘버를 따거나, 정회원이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 중 하나였어야 했다. 현재 내 등반 실력은 8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아졌고, 체력 또한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가져본 체력 중 최고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B 선등을 서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당시에 등반 능력은 커녕 기초 체력과 운동신경을 눈씻고 찾아봐도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정회원이 되겠다는 욕심 하나로 말 그대로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건 욕심이 맞다. 등반과 선등에 대해, 정회원과 회원 자격에 대해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지만 이게 내가 느낀 바다.

 다시 등반 이야기로 돌아오면, 항아리 크랙까지 가는 길이 (선등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무서웠다. 볼트가 없고, 일주일 전 갔다온 고독길과 비교해서 훨씬 더 불안정한 상태로 캠을 설치해야 할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항아리 크랙은 내 기억속에 있던 것보다 더 위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넘어갔다. 최근에 볼더링을 많이 해서 잔기술이 는 덕인지 니바를 끼우니까 이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한 번 니바를 끼우고 손을 조금 더 올려서 니바를 고쳐 끼우니까 나무에 손이 닿았다. 얼마전 돈하 형님이 인수B에 나무가 사라져서 어려워졌다고 하셔서 걱정했는데 아니었다. 형님이 장난으로 하신 말이거나 다른 나무를 말씀하신 것 같다. 이렇게 2피치(인수B 1피치)도 추락 없이 올라갔다.

 인수B에서 제일 어려운 구간이 항아리 크랙이라고 생각했어서 이 다음부터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웬걸, 이 날은 항아리 크랙이 제일 쉬웠다. 3피치(인수B 2피치) 실크랙을 지희가 멋지게 발재밍을 해서 손은 거의 쓰지도 않고 올라가길래 나도 발재밍을 잘 못하기는 하지만 어느정도는 쉽게 올라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오만이었다. 발을 전혀 믿지를 못 해서 거의 손으로만 올라갔다. 다행히 크랙장갑을 끼고 있어서 발을 거의 버리고도 손으로만 올라갈 수 있었는데 힘이 너무 많이 들었다. 절반을 좀 지나서 지희가 힘들어한 부분이 있었는데, 각이 세지고 발이 좋지 않아서 나도 한 번 텐션을 받고 올라갔다. 그리고 이때 발을 못 믿기는 했어도 계속해서 무릎을 틀면서 발재밍을 했기 때문에 원래부터 안 좋았던 무릎이 완전히 나가버려서 이후 하산하는 데만 세 시간이 걸리는 대참사를 맞이하게 된다... 사실 이 피치에서 제일 무서웠던 부분은 실크랙이 아니라 그 이후 쌍볼트 직전 짧은 구간이었다. 동작이 어려운 건 아닌데 손 재밍을 해야 하는 크랙 사이로 자일이 들어와있어서 떨어지면 바로 자일에 손과 팔이 쓸리는 구조였다. 그래서 절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 그것은 즉 선등 서는 마음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고, 그 생각을 하니 무서웠다. 고독길 선등 설 때를 생각하며 발을 높게 올려서 좋은 곳에 발을 올리고 넘어갔다.

 4피치(인수B 3피치)도 쉬운 곳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희가 초입에서 아예 오도가도 못 하는 채로 한참을 있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고 위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 물어봤는데, 어디를 못 하고 있는 건지 못 알아들으시는 눈치였다. 그래서 어려운 길이라서 지희가 못 가는 게 아니라 방법을 못 찾아서 못 가는 것 같아서 주변에 다른 걸 찾아보라고 했다. 몇 번 더 시도하더니 내가 한눈을 판 사이에 어느샌가 그 부분을 넘어서 있었다. 어떻게 갔냐고 물어보니 발을 원래 디디려던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썼다고 했다. 공룡발톱으로 넘어서기 직전에도 조금 힘들어하더니 어찌어찌 넘어갔다. 공룡발톱에서도 무서워하길래 예전에 발을 넓게넓게 딛었어야 편했던 게 생각나서 말해줬더니 바로 실행에 옮겼다.

 지희가 힘들게 올라가서 내 차례 때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지희가 고생했던 자리에 가서 지희가 했던 말을 떠올리니 바로 이해가 됐다. 조금 더 좋아보이는 발자리와 그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아보이는 발자리가 있는데, 더 좋은 곳을 디디면 자세가 이상해진다. 그래서 나는 바로 덜 좋아보이는 걸 밟고 올라갔다. 윗부분에 지희가 고생했던 곳에서는 키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오른쪽 위로 쭉 뻗어서 좋은 홀드를 잡아야 하는데 내 키로 간신히 닿아서 지희는 그 홀드를 못 쓰고 올라가야 해서 난이도가 훨씬 더 높게 느껴졌을 것 같다. 지희의 조언과 그나마 조금 더 큰 키 덕분에 나는 4피치를 수월하게 올라갈 수 있었다. 공룡발톱에서는 캠을 회수한 다음에 펜듈럼 칠까봐 좀 무섭긴 했지만 발이 너무 좋아서 생각보다 괜찮았다.

 도착하고 확보하기 전에 지희가 이제 저 위로 자일을 따라서 올라가야 한다고 했다. 위를 보니 슬랩이 있었다. 각이 별로 안 세 보이기는 했지만 떨어지면 바로 사망인데 여기를 그냥 가라고...? 그런데 창근오빠니까 가능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지희한테 제안을 했다. 내가 먼저 위로 올라갈테니 내 빌레이를 봐주고 내가 올라가서 지희 빌레이를 봐주겠다고 했고 지희도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사실상 선등으로 슬랩을 올라가는데... 올라가다가 알게 됐다. 자일은 이후에 그 방향으로 가게된 거고 원래는 슬랩이 아니라 왼쪽 쌍볼트에 확보를 하고 거의 오아시스 같은 곳으로 올라선 다음 확보줄을 푸는 거였다는 사실을... 아주 심장 쫄깃하게 짧은 선등(?)을 끝내고 바로 그 안전한 곳으로 내려갔다. 인수B로 정상에 가본 적이 없어서 이제 등반이 끝나고 걸어가는 것만 남은 줄 알고 자일을 사려서 올라갔다. 그런데 아직 한 피치가 남아 있었다. 자일 예쁘게 사려서 신났었는데...ㅎㅎ

 다음 피치는 존재 자체를 몰랐던 곳이라 난이도도 알 길이 없었다. 먼저 올라가는 지희에게 물어보니 손이 나쁘지는 않다고 했다. 중간에 지희가 한 번 크게 떨어졌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창근오빠가 중간에 캠을 다 회수해서 자일이 펜듈럼을 칠 수 있는 상태로 되어 있었고, 빌레이도 느슨하게 보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도 다치지는 않아서 바로 올라갔다. 지희가 올라갈 때는 몰랐는데 내가 올라가려고 보니 자일이 완전히 사선으로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창근오빠가 캠을 다 회수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지희가 회수를 하면서 올라간 줄 알았다. 떨어지면 바로 펜듈럼을 쳐서 옆에 있는 벽에 들이박을 게 뻔해서 이번에도 선등을 서는 기분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한 번도 안 떨어지고 올라가기는 했는데 심지어 캠 친 것도 없으니까 추락하면 선등보다도 더 많이 추락할 수도 있는 거여서 좀 많이 무서웠다.

 이제는 진짜 끝난 줄 알았는데 또 끝이 아니었다. 고도감이 있는 곳에서 홀드를 잘 찾아서 한 두 동작 정도 해서 오른쪽으로 넘어가야 했는데 지희가 키가 모자라서 거의 패닉이 왔다. 창근오빠가 절대 줄을 안 내려준다고 하다가 지희가 키 때문에 절대 할 수가 없다고 주장하니까 그제야 자일을 내려주셨다. 떨어지면 바로 사망이고 뒤에 받아줄 사람도 없어서 나도 무서웠는데 내 키로는 그래도 괜찮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아마 정환오빠는 이게 왜 어렵지?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키가 중요한 것 같았다. 이 다음에 또 몇 미터 정도 자일 없이 올라가야 하는데, (사실 자일 없이가 의무는 아니다) 이번에는 바위가 다 젖어있다면서 창근오빠가 자일을 픽스해주셨다. 지희를 먼저 올리고, 나는 한 번 등반을 해보고 싶기는 했는데 해보다가 추락하면 자일 잡지도 못 하고 그냥 인생 하직할 것 같아서 얌전히 픽스된 자일을 잡고 올라갔다.

 드디어 참기름 바위에 도착했는데, 나는 정상에 도착해서야 거기가 참기름 바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살면서 참기름 바위를 빌레이나 픽스된 자일 없이 올라간 게 일주일 전 고독길 선등 때가 처음이었는데, 정환오빠가 자일을 깔아두지 않은 채로 위에 있었고, 올라온 방향이 다르다보니 거기가 참기름 바위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창근오빠가 먼저 어디를 잡고 밟아야 되는지 알려주면서 올라가고, 지희가 떨어지면 받아주기 위해 내가 마지막으로 올라갔다. 지희가 첫 동작에서부터 완전 패닉이 됐다. 내가 봐도 치핑 된 곳을 밟으려면 발을 거의 가슴 높이까지 올려야 돼서 자세가 말이 안 돼보였다. 지희가 자일을 내려달라고 사정을 했는데 할 수 있다면서 끝까지 안 내려주셨다. 다행히 사고가 없었지만 보는 나도 너무 무서웠고, 지희는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을 맞이하는 심정이었을 거다.

 사실 참기름 바위라고 생각했으면 나도 덜 무서웠을 텐데, 생전 처음 가보는 미끄러운 바위를 빌레이 없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너무 무서웠다. 나도 몇 번이나 '진짜 큰일났다. 자칫하단 죽는다. 어차피 죽을 꺼니까 그나마 살 확률을 높이기 위해 마지막으로 이 동작이라도 해 보자'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간신히 올라갔다. 나는 참기름 바위 같은 곳에서 선등자가 되었든 누가 되었든 한 명이 빌레이를 받으면서 올라가고, 다음 사람들 빌레이를 봐주거나 자일을 픽스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선등자도 추락하더라도 살 수 있고, 나머지 사람들도 안전하게 올라갈 수 있으니까.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곳에서 굳이 모든 등반 대원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참기름 바위를 오를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창근오빠와 정환오빠는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하강하면 되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앉아서 점심을 먹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날 인수봉 정상에 오른 첫 팀이라는 사실은 좀 기분이 좋았다. 구름에 둘러싸인 정상에 앉아 지희가 전날 사온 김밥을 먹었다. 풍경이 너무 멋있어서 영상으로 남기고 하강을 시작했다. 이쯤 되니 어느정도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하강 지점까지 또 자일을 설치하지 않고 두 분이 먼저 내려가 계셨다. 나는 여기서도 자일이 없이 이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도 한 번도 자일 없이 이동해본 적이 없다. 어차피 두 분 다 내려가버리셨고, 내 의견은 묵살될 거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또 한 번 신의 가호를 바라며 자일 없이 하강 포인트로 이동했다. 하강하면서 등반 중인 팀이 있어 어느 길을 가시는 거냐고 물어보니까 비둘기길이라고 하셨다. 말로만 듣던 비둘기길! 하강하는 곳에 있는 건 알았지만 정확히 루트가 어떻게 되는지는 몰랐는데, 사람들이 붙어있는 걸 보니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이날 무릎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하산을 시작하는데 무릎이 너무 아파서 한 걸음도 밑으로 내려가기가 힘겨웠다. 거의 팔 힘으로 옆의 바위를 잡고 몸을 돌려 엉덩이로 앉듯이 해서 다리를 내리는 식으로 내려가야 했다. 앞 사람들과 간격이 많이 벌어져서 다들 내가 사고라도 당한 줄 알았을 거다. 미안해서 몇 번이나 먼저 가 계시라고 했는데 계속 기다려주셨다. 대슬랩을 지난 후에는 도저히 못 걷겠어서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앉아서 쉬었다. 앉아서 오후에 만나기로 했던 다른 등반팀에게 무릎 때문에 못 간다고 연락을 돌렸다. 그 등반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적어도 한 달 간은 산에 가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구조대에 가니 멘소래담으로 마사지를 하고 무릎에 붕대를 감아줬다. 지나가던 등산객이 응급 처치를 해주는 걸 보며 고생하신다면서 구조대원분께 초콜릿 두 개를 주고 가셨는데 구조대원분이 그 중 하나를 나한테 주셨다. 쏘 스윗... 멘소래담 덕인지 통증은 많이 사라졌지만, 이미 무릎이 다 망가진 상태인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스틱에 최대한 의지해서 천천히 내려갔다. 그렇게 무려 3시간에 걸친 하산이 끝났는데, 비도 조금씩 오는데 다들 하염없이 나를 기다려주셔서 너무 죄송하고 감사했다.

 창근오빠 차를 타고 곧장 우촌식당으로 향했다. 식단 관리를 해서 일반식을 오랜만에 먹었더니 원래도 자극적인 우촌식당 음식들이 굉장히 맵고 짜게 느껴졌다.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열심히 먹었다. ㅋㅋㅋ 막걸리도 짠 하는 용도로만 받았지만 등반하고 이렇게 우촌식당에 모여 막걸리를 마시니 오랜만에 옛날 같은 느낌이 나서 좋았다. 감사하게도 창근오빠가 집 바로 앞에 내려주셔서 편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새벽에 잠을 너무 못 자서 잠깐만 자야지 생각하고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니 12시간이 지나 있었다. 많이 피곤했었나보다. 등반을 다시 시작한 후로 인수봉에서 고독길 제외하고 제대로 된 길을 끝낸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볼더링 잘하고 싶으면 볼더링을, 지구력 잘하고 싶으면 지구력을, 멀티등반 잘하고 싶으면 멀티등반을 해야 한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 같다. 볼더링을 열심히 해서 볼더링 실력이 많이 늘었는데, 그렇다고 멀티등반을 실력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2학년 때의 내가 그 안 좋은 체력을 가지고도 어떻게든 인수B 1피치까지 선등을 설 수 있었던 건, 그 날을 위해 똑같은 길을 셀 수 없이 많이 가봤기 때문일 거다. 무릎 때문에 힘들긴 하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대로 멀티도 볼더링만큼 열심히 해보고 싶다.
이름아이콘 박승환
2022-06-24 23:37
신혜가 인수B에서 생일바위를 했구만.
나도 그 옛날 인수B에서 비오는 날 고생 엄청하며 생일바위를 했었는데 ㅎ
신혜의 자세한 등반기를 읽으니 새로 등반을 하고 온듯한 느낌인데
안타깝게도 옛날 그때에 어떤 루트를 어떻게 갔었는지는 거의 기억이 안나네.
다시 가보고 싶구만 ㅎㅎ
   
이름아이콘 김신혜
2022-06-27 15:13
인수b 생일바위한 사람들끼리 언제 한 번 다시 가야겠네요!!ㅎㅎ
그저께 형님들과 대화 나누다보니 제가 인수b 2피치인 줄 알고 올랐던 실크랙이 학재길이라고 하네요 ㅎㅎ
어쩐지 제 기억속의 인수b보다 너무 어려워서 놀랐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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