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난이도의 슬랩이 많이 있어서 참 의욕이 샘솟는 것이었지만 그만큼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에 빌레이를 열심히 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슬랩인데 미끌어지지 않는게 참 좋았다. 루트들은 다 난이도가 비슷했지만 가장 우측에 강사님이 어려운 길이 있다고 하셨다. 가보니 강사님 가족분들이 매우 신중하게 한발한발 내딛으시며 줄을 걸고 계셨다. 나는 운이 좋게 재학생 중에 제일 먼저 그 길을 가볼 수 있었다.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하고 바짝 긴장하면서 갔지만 루트 윗부분에는 거의 1미터 간격으로 손가락을 넣을 만한 구멍이 있었다. 긴가민가해서 여쭤봤지만 써도 된다고 하셔서 그곳에 손과 발을 써가며 가니 안 미끄러지며 갈 수 있었는데 슬랩보단 페이스로 간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가는게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등반했던 길은 그 어려운 길을 등반하는 경태를 옆에서 찍어주기 위해 간 그 옆의 길이었다. 이미 경태는 많이 올라가 있었고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지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빨리 올라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네발동물처럼 손과 발을 동시에 움직이는 수준으로 올라갔다. 맨위에 첨부된 사진이 바로 그것. 그렇게 올라가다가 중간에 ‘어 어떻게 내가 이렇게 가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슬랩은 발을 믿는게 중요하다는 걸 체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