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917 선인B
선인봉에 처음 가게 되었다. 어프로치가 어떤지 궁금해서 유빈이한테 물어보니 인수봉보다 1.5배 정도로 길긴 하다고 해서 조금 걱정을 했는데 긴 대신 길이 정말 좋고 뒷부분만 빼면 경사도 심하지 않아서 편안했다.
선인B루트는 다른 사람들이 거의 하지 않는 비인기 루트라고 한다. 형님들께서 우리 산악부에서 옛날에 선인봉에 정말 많이 왔는데 그중에 선인B루트를 주로 등반했다고 말씀해주셨다. 루트가 비인기 루트인 만큼 다음 주에 있을 고희산행 전에 미리 루트 정비 겸해서 선인봉으로 산행을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트 정비인 만큼 철의 형님께서는 호미도 들고 오셨는데 루트에서 이게 진가를 발휘하는 걸 보고 역시 짬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유빈이가 선등을 서고 철의 형님이 세컨을 봤다.
1피치는 슬랩이었는데 많이 어려웠다. 유빈이도 꽤 어려워하며 올라가는 게 느껴져서 나는 안 된다 싶으면 자유등반은 포기해야겠다 싶었다. 중간에 잘 잡히고 밟히는 홀드가 있긴 한데 그 거리가 꽤 되기도 하고 나머진 미끄러워서 신중하게 등반해야 올라갈 수 있었다.
2피치는 크랙인데 크랙 사이로 잡초가 무성했다. 여기서 철의 형님의 호미가 진가를 발휘했는데 흙과 풀을 뽑아서 낙초를 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짬이 차면 저런 것도 할 수 있구나.. 루트 자체는 크게 어렵지 않고 무난하다.
3피치가 하이라이트다. 처음 경험해보는 침니인데 유빈이가 애를 그렇게 먹는 건 처음 봤다. 3피치 전의 테라스가 좁고 슬링으로 확보점을 만들어야 해서 철의 형님 2피치 등반이 끝나고 거기서 세컨을 먼저 보고 나머지를 올려야 해서 셋이 기다리는데 꽤 길었다. 여기서도 유빈이가 저렇게 고생하면 나는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걱정이 정말 많이 됐다. 2시간 정도 시도를 했던 것 같은데 물도 못 마시면서 고생하면서도 선등이니까 어떻게든 길을 내려는 모습이 멋있었다. 하지만 결국 방법이 안 보였는지 내려와서 철의 형님이 3피치를 걸어주셨다. 내 앞으로 유근이와 성윤이가 하는 걸 보면서 침니 자세를 대충 파악하고 등반하니 좀 할만했다. 전에 악우길에서 배웠던 발의 앞뒤로 재밍을 하는 것도 잘 이용했고, 그래도 나름 잘 올라간 것 같다. 철의 형님께서 칭찬도 해주셨다. 형님들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고 밑에서 잘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하강은 무난하게 할 수 있었다. 끝나고 보니 유근이가 흰옷을 입고 왔었는데 거의 검은 옷이 되어 있었다. 비인기 루트이다 보니 먼지가 어마어마한 것 같다. 그나마 5번째로 등반해서 내가 그중엔 제일 나았겠지만 이런 루트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매력 있고 재밌는 루트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인기가 없다니 아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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