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선사 앞에 검정 에쿠우스 차가 줄지어 들어섰지. 흰 클라이슬러 세단이 들어서자마자 한반도 온갖 철새들이 재잘재잘 댔어. 주인공은 바로 대통령 후보. 그 분은 승방에 들려 예쁜 비구니에게 합장했지. 모두들 하늘재를 헐레벌떡 넘고 인수산장에 모였지. 돼지머리, 시루떡, 막걸리를 차렸어. 돼지주둥아리에 만원 짜리 지폐를 수십 장 끼어두고 단군 할아버지께 三杯에 三拜 올렸지. 祭主는 대통령 후보. 왁자지껄하더니 서울 촌놈이 큰 소리로 외치데. "준비된 대통령 님을 위하여, 건 빠이." 강원도 촌년이 한술 더 뜨데. "각하 바로 뒤에 제가 있어요." 이 말에 소태나무 잎사귀 민달팽이가 떨어져 죽었어. 嗚呼哀哉라. 단군 할아버지께서 여의도 철새들을 왼쪽 뒷발로 냅다 걷어찼지.

     도선사 앞에 고물 엘란트라가 들어섰지. 반백 머리 쉰 살쯤 된 신사가 힘없이 트렁크를 열었어. 두리번거리다가 흙 잔뜩 묻은 등산화로 바꿔 신었지. 작은 배낭에 가족사진, 이력서 열 장, 케네디의 "용감한 사람들" 책이 들어있었어. 뒷주머니에는 김지하의 詩集이 있었지. 하늘재 굴참나무 밑에서 가족의 내일을 생각하며 詩 몇 구절 낭송했어. 해가 백운대 중턱에 내려올 무렵 인수산장에 들어섰지. 산장지기가 하는 말. "부장님, 어제도 오시더니 오늘 웬일이세요." 대답. "올 가을엔 막내딸을 여의는데, 큰 일이네요." 오아시스 늙은 소나무가 쓸쓸히 웃었어. 단군 할아버지께서 그 슬픈 사람의 등을 곱게 두드려주었지.

     도선사 앞에 젊은 부부가 유모차를 몰고 들어섰지. 한살바기 아기가 방글방글 웃었어. 아내 배낭에 첫돌 치른 백설기 두어 덩어리, 젖병, 누드김밥이 들어있었어. 남편은 지게배낭에 아기를 태우고 인수봉으로 향했지. 그 부부는 클래스메이트 동갑내기로 대청봉에서 결혼했대. 그 부부는 아기다람쥐와 이야기하다가 하늘재를 넘었지. 인수 산장지기는 아기 이마에 뽀뽀해주었어. 대슬랩에서 남편이 톱을 서고 아내는 아기를 업고 암벽등반 했어. 오아시스까지만 올라갔어. 옆에 있던 산꾼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지. 발끝에 내려다보이는 나무바다 물결이 갈바람에 출렁이고 있었어. 단군 할아버지께서 한살바기 아기 양쪽 볼을 어루만져주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