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 교수에게

찬바람 부는 서초동 뒷골목

늙은 은행나무를 툭툭 구둣발로 건드리며

열매를 줍는 사람의 표정은 밝을 수 있을까

그 사람에게 삼십 년 된 개성 인삼 한 뿌리와

김이 무럭무럭 피어나는 군고구마 하나를

신문 봉투에 넣어준다면 고개를 숙이고

그 사람에게 개마고원에 덮인 방울꽃 한 송이와

세석평전에 널린 피멍울꽃 한 다발 따다가

윗주머니에 꽂아준다면 벙싯 웃을 수 있을까

하나 된 독일에 가면 독일 형법을

두 동강난 한반도 남녘에 가면 보안법을

반드시 지켜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

무서운 법보다 사람이 먼저인데

무서운 이념의 총성은 멈추었는데

어둠침침한 지하실 보안등 밑에서

시셋말로 원수를 제 새끼처럼 사랑하고

미운 오리새끼에게 개떡 하나 더 던져줄 수 있을까

송두율 교수, 검찰총장, 국정원장, 반국가 보안사범

법무부장관, 대법원장, 국회의장, 비전향 장기복역수

김지하, 임수경, 김정일 장군, 대통령이 함께

청와대 영빈관에서 문배주 술잔 돌리며

콩나물비빔밥 한 그릇씩 배불리 들고

향로봉에서 어깨 맞대고 통일의 노래 부르며

향로봉에 통일의 꽃나무 한 그루씩 심는다면

수유동 아카데미 하우스 화단 앞

늙은 은행나무는 노랗게 웃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