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가으내

산꾼들은 윗통 벗고 긴 휘파람 불며

걸미고개 감우재 돌고개 모래재 질마재 넘고

분젓치 것대산 살티재 구치치 말티재 넘었더니

100Km 하고도 40Km 한금정맥 긴 여정의

마지막 도착점인 천황봉만 남았네

휴양림 귀퉁이에 나뒹구는 초겨울 낙엽이 짐짓

산꾼들의 발걸음 끌어당기는데

문장대 뛰어내려온 초겨울 바람 하나가

법주사 팔상전 처마 끝에 달린 풍경소리 흔들고

도심 흙먼지에 찌든 폐부를 찌르네

30대 40대 50대 60대 산꾼들 깨끗하게 웃으며

기쁨이 넘쳐 출렁이는 술잔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부어라 마셔라 하는데

서로 나눈 이야기꼬리가 꼬리를 무는데

남몰래 술자리 틈새 비집고 들어선

한라산 비바리도 백두산 단군 할아버지도

속리산 산지기도 법주사 주방스님도 합석했네

가슴속 깊숙이 피어난 이야기꽃은

때론 어두운 세상을 지우기에 넉넉하고

더러는 믿음과 믿음의 연결고리인 것을

헛소리에 귀기울이는 사람들은 어찌 알겠는가

눈먼돈에 빙긋 웃는 사람들은 어찌 외면하는가

천황봉 꼭대기에 마침표 하나를 꾹 찍기 위해

박새 울음 하나에 졸린 눈꺼풀 비벼 가며  

실한 김치콩나물국에 밥 한술 비벼 먹고

아내와 함께 뒷등 뜨거운

한 뼘의 통나무 방바닥에 드러누우니

천황봉 너머 초승달이 새벽을 재촉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