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반실을 폐쇄하는 전날밤 당일 오후에 국립수목원에서 개최된 식물원 관련 워크숍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수원에 들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피곤하기도하고 밤늦게 산속에서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아내가 걱정되어 서둔벌의 마지막 밤에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점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수원 반실에 보관되어 있던 물품들을 우리집 창고에 잠정적으로 보관시켜달라는 연락을 받고 어수선하긴 하지만 공간은 여유가 있으니 받아두기로 하였다. 다음날 용달차편으로 짐을 보내는데 따라올 사람이 없단다. 마침 박승환이 소식을 듣고 짐 내리는 것을 돕겠다며 찾아 왔다.
간간히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어서 트럭의 짐이 젖지나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얼마 후 도착한 소형트럭은 방수 덮개를 잘 씌우고 들어왔다.
40년동안 쌓인 잡다한 물품들이 어떤 것은 상자에 담기고 어떤 것은 둘둘말아 끈으로 묶여서 트럭 밖으로 내려졌다. 상자와 천막 묶음은 각목을 받혀놓은 창고 바닥 한켠에 쌓아 놓고 깨지기 쉬운 액자들은 앵글 선반위에 얹어 놓았다.
엉성하게 지은 목조 건물이지만 내게 필요한 연장들을 가지고 작업하거나 잡동사니를 보관하기에 불편이 없고 한옆을 칸을 막아 완벽하게 갖추어진 단열시공은 산에서 잘라온 나무를 때는 보일러 난방으로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런닝차림으로 방안에서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다.
계룡산 정상에서 금남정맥을 따라 남하하다가 향적산 직전에 서쪽으로 꺾이는 정맥을 따르지 않고 직진하여 능선을 계속 진행하면 십수킬로미터를 더 나아가다가 능선이 끝나는 마지막 봉우리에 황성 또는 황산성이라고 불리우는 백제시대의 고성이 나타난다. 황성 남쪽이 연산면 소재지이고 서남쪽 논산 시내방향으로 평야가 전개되는데 이곳이 백제의 맹장 계백장군이 신라군을 맞아 혈투를 벌인 끝에 최후를 맞은 황산벌이다.
황성 북쪽 계룡산 방향으로 2-3킬로미터 위치에 깃대봉으로도 불리우는 시루봉이 있고 그 서쪽자락 산밑이 내가 살고 있는 덕바위이다. 가까운 곳에 백제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왕래한 흔적이 있어 많은 토기가 출토된 고분군이 두군데에 있고 동네사람들 말로는 이곳에 집단으로 사람이 거주한 것은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에게 하사된 땅이어서 그 일족들이 처음 마을을 형성하여 지금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은 후손들이 흩어지고 다른 성씨들이 들어와서 50여호의 주민 중에 신씨도 4-5가호가 남아 있으며 내집에 붙어 있는 밭과 이어지는 산이 신씨 종중 산으로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마을에서 3-4백미터 떨어진 산속이어서 외로운 감이 없지 않아 진입로를 만들면서 분리된 땅을 쪼개어 홍재훈(68)과 손근남(77), 그리고 우리대학 후배 교수 한 사람에게 분양하였다. 은퇴 후를 준비한다며 재훈은 황토집을 구상중이고 근남은 금년에는 시간을 내어 원두막이라도 지어야겠다며 벼르고 있다. 후배교수는 조그만 목조 단층집을 지어 놓고 잔디를 심은 마당 구석구석에 온갖 나무들을 심으면서 한옆으로는 부인이 텃밭을 일구어 각종 푸성귀를 심어먹느라 바쁜 여름을 보내었다. 미국 샌디에고에서 교환교수 생활한 경험이 있는 그는 자신의 집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들판의 풍경이 흡사 미국에 살적에 바닷가 언덕의 주택에서 태평양바다를 내려다 볼 때의 느낌을 연상케 한다며 즐거워하고 있다.
강신영 회원이 수원 반실을 철수하면서 우리회원 모두의 손때가 묻고 우리 모두의 숨결을 담고있는 기념물들을 대전의 쓸쓸한 시골 구석으로 보내면서 가슴이 쓰리다는 느낌을 표현하였는데 우리집이 전혀 쓸쓸한 곳이 아님을 말하려고 장황한 말을 늘어놓았다.
세사람에게 분양하고 남은 우리집의 면적이 5정보(만오천평)인데 2년전에 조사한바로는 나무만 60여종이 내산에 분포하고 있어서 초본류는 더 많은 종류가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지난달 중순부터 8주간 진행되고 있는 한국자생식물보존회 식물탐구학교에 나와 함께 출석하고 있는 강회원의 부인이 싹이 돋아 꽃피는 계절에 한번 시간을 내어 조사하여주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형편 되는대로 식물을 수집하여 나만의 작은 수목원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하고 있는 나와 황토 찜질방을 만들어 노후의 건강을 챙기겠다는 재훈,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과 텃밭을 가꾸어 보려는 근남이 모여사는 우리마을 덕바위에 강신영회원이 한번 마나님과 함께 다녀가면 농대산악반의 얼이 깃든 골동품들을 쓸쓸한 촌구석으로 보냈다는 섭섭한 마음이 어느정도 가셔질 것으로 생각된다.
강신영
2004-03-09 07:03
전양 형님에게:
황산벌 동네가 온통 눈으로 뒤덮여있습니다.
산꾼들의 표정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40년 피땀 밴 농대 산악회의 추억들이
형님 댁에 잘 보관되어 있어 이제서야 마음이 놓입니다.
머리 숙여 감사에 감사드립니다.
사랑방 메뉴
강신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