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던 겨울

소한이 을유년 문턱에서 몸부림치던 날

그때 내 나이 쉰 아홉 살 됐다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면서  

쩜당 천원짜리 고스톱을 치고 있었지

개좆보다 못한 내가 피박 씌우고 싹쓸이 할 찰나에

염병할 피 한바가지 토하고 개죽음 당할 뻔했어

새까만 의대 후배 교수 등에 업혀 응급실로 달려가

폐동맥을 땜질하고 개죽음 겨우겨우 면했어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다는 것을 잘 알지만

왜 나는 목련꽃보다 더 아프고

왜 툭하면 병원을 찾는지도 너무 잘 알지

젖통 큰 간호사가 빙긋 웃으면서 말했어

어머나 또 오셨어요

기분 나쁘지 않았어. 꽤 미인이거든

별들이 춤추는 꿈속에서 개마고원을 홀로 걷고 싶었어

그러나 죽음의 계곡을 다시 찾고 싶지 않았어. 몇 번 갔다왔거든

1513호 병실은 독방 감옥이야

아침 햇살이 싫고 하루하루 삶이 지겨워

끼니때마다 배고픈데 밥맛은 소태껍질 맛이고

TV 틀어놓고 VIP 대접을 받으면 뭣해

밤하늘 별똥꽃잎 하나가 그리워지고

땅바닥에 나뒹구는 겨울낙엽 하나가 부러웠지

새벽 두시 정각마다 누군가 가만히 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죽음의 化身일까 아니면 삶의 分身일까  

놀라지마, 素服을 입은 天使가

내 손목을 짚고 맥박과 체온을 체크할 따름인데

나는 그것조차 두렵고 싫었지

도봉산이 창틀너머로 멀리 가까이 보이고

산마음이 활활 장작불처럼 타오르는데

산꾼들에게 기쁜 소식을 일부러 알리지 않았어

왜냐면 병 문안 올 바로 그 시간에

도봉산 박쥐소굴을 샅샅이 뒤져야하기 때문이지

아니 아니 찌그러진 내 얼굴이 환해졌기 때문이지

냉장고 속에 먹거리가 그득했어

그런데 그 속에 막걸리 한 됫병 없었던 거야

밤마다 왕대포 딱 한잔이면 지긋지긋한 불면증이 사라질 거야

눈발 흩날리는 꿈속에서

개마고원을 종주하는 먹구름과 보랏빛 감자꽃밭과

스라소니의 피맺힌 울음소리를 꼭 한번 보고 듣고 싶었지

산꾼들이여 내 물음에 대답 좀 부탁해

이 풍진세상에서 쉰 아홉 살까지 살아오는 동안

남을 속 썩이고 남을 헐뜯기만 했지

나는 정말 개좆 같은 놈이야

그런 나를 내가 어떻게 믿어 내가 나를 언제까지 믿어

대한이 을유년 문턱에서 몸부림치던 날

개좆보다 더 못한 나는 1513호 병실을 나섰지

살아야할 날들은 비록 짧고도 어둡지만

목련꽃망울 터질 때까지

단테의 시집을 읽으며

나를 용서해달라는 말을 생각하고

나를 용서한다는 말도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