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농업생명과학대학산악회 ::: CALSAC SNU

ㆍ작성자	허정회
ㆍ작성일	2005/06/17 (금)
ㆍ분 류	글모음
ㆍ첨부#1	산행기(북한산,20050611).hwp (0KB) (Down:37)

ㆍ추천: 38 ㆍ조회: 1528

구자란 환영 토산모 산행기
지난 6월11일 토산모 산행기입니다.
첨부파일로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작은 작았지만 끝은 멋있었던 구자란 환영 토산모"

  오래간만의 ‘토산모’ 산행이다. 작년 ‘학년말고사’ 산행 이후 처음이니 어느덧 반 년만인 셈이다. 그것도 미국에서 며칠 전 일시 귀국한 구자란 회원이 산행 한 번 같이 하자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북한산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특히 서울 강북지리에 밝지 못할 것 같은 자란이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전화해 본다. 바로 뒤차로 따라오고 있다. 약속장소에 약간 늦게 도착할 것 같아 정성교 대장과 단골멤버인 안상원 형 등과 통화를 시도해 본다. 이상하게 전화연결이 안된다. 예감이 안 좋다. 가까스로 윤섭 형과 연락이 됐는데 오늘 다른 모임이 있어 못 올 것이라 한다. 몇 명 되지 않을 것 같은 일말의 불안감을 안고 구자란 회원을 수유역에서 만나 택시에 몸을 싣고 북한산으로 향한다.

  내 우려를 깨고 우촌식당에는 만식 형을 비롯해 노수경, 오영훈과 한 재미교포 여학생(김소라), 이창근, 배기성 군 등이 자리를 하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만식 형을 제외하고는 오늘 모두 인수봉을 등반할 팀이다. 잠시 후 명환이가 근처에 있다며 정확한 위치를 물어 온다. 오늘 대원은 만식 형을 비롯해 자란이와 명환이 그리고 내가 다다. 말은 안하고 있지만 자란이 눈에는 실망의 빛이 역력하다.

  당초 예상을 뒤엎고 다행히도 날씨가 우리 편을 들어준다. 어제 비 온 뒤끝이라 하늘이 어느 때보다도 맑고 깨끗하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도선사 방향으로 가다가 왼편에 있는 진달래능선으로 올라선다. 수없이 다닌 북한산이건만 이 코스는 초행인 것 같다. 제법 가파르다. 계속 올라가면 북한산 14대문 중의 하나인 대동문(大東門)으로 이어진다 한다. 우리들의 화제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자란이네가 중국 산동성(山東省)옌타이(煙臺)에 사업체가 있는 관계로 주로 중국 관련된 것들이다. 중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정말이지 21세기는 중국의 시대가 될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중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편다. 왜냐하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관리(官吏)들이 청렴해야 되는데 중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말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누구 말이 맞는지는 앞으로 십 여 년만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21세기는 과연 중국의 시대가 될 것인가

  그럭저럭 산 중턱에 있는 매표소까지 왔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양섭이다. 오늘 호남정맥 산행이 있어 당연히 그리로 갔을 줄 알았는데 이게 웬 일인가. 동기 자란이가 보고 싶어 이리로 발길을 돌렸다한다. 그도 그렇지만 아마도 내일 있게 될 병성 형 사갑(死甲 : 亡者의 환갑)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릎관절이 불편하다는 자란이는 생각보다 잘 오른다. 그런데 요즘 ‘기러기아빠’로 있는 명환이가 힘들어한다. 많이 불어 난 체중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운동 좀 해서 몸무게를 좀 줄이라고 해도 잘 안 되는 모양이다. 과체중은 만병의 근원인데 걱정이 앞선다.

  명환이를 위해 휴식을 취한다. 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좌로부터 병풍바위-만장봉-만경대-백운대-인수봉 등 북한산 주봉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만식 형님이 이 중 만경대-백운대-인수봉으로 이루어진 삼각산(三角山)에 얽힌 유래를 설명한다. 당초 이 세 봉우리는 세 개의 귀퉁이를 이룬다 하여 세귀봉이라 불렸는데 와전돼 언제부터인가 쇠귀봉이 되었고 이것이 우이(牛耳)로 한자화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얘기다. 엄청난 기억력에 언변도 좋고 박식하신 것에 대해 항상 놀랄 뿐이다.

우이(牛耳)의 유래를 아는가

  쉬엄쉬엄 가는 느긋한 산행이 마음에 든다. 다 명환이 덕분이다. 나이를 들어가면서 이제는 같은 등산이라도 좀 더 여유를 갖고 하고 싶다. 옛날 같으면 무엇이 그리 급했던지 앞 사람 뒤 발꿈치만 보고 올라갔었는데 많이 달라진 자신을 돌아본다. 얼마 올라가다가 명환이가 또 뒤로 쳐지기에 쉬어가기로 한다. 아줌마들이 잔뜩 있는 쉼터다. 아줌마들만 네 명이다. 먼저 도착하신 만식 형에게 그들이 먹고 있던 오렌지를 건넨다. 내가 눈치도 없이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마지못해 한 조각을 준다. 그러면서 아줌마들에게 만식 형의 나이를 알아 맞춰보라고 수작을 건넨다. 별난 얘기가 다 나온다. “58년 개띠 쯤 된 것 같다”, “아니야, 오십 줄은 돼 보인다, 얘” 결국, 만식 형의 나이는 55세로 결론이 났다. 바로 우리 나이다. 이로써 만식 형은 72학번으로 편입됐다. 혼자만 62학번으로 외로웠는데 이제 모두 72가 된 것이다. 10년을 훌쩍 수직 상승한 ‘얼짱’ ‘몸장’ 만식 형이 부럽기만 하다.(몸장이 좀 이상하지요. '짱'으로는 등록이 안된답니다)

  그로부터도 그 아줌마들하고 한 번 더 만나는 사이 어느덧 대동문에 다다랐다. 어느 대기업에서 합동으로 등산을 왔는지 온 산이 어수선하다. 이제 우리는 노적사(露積寺)로 향해야 한다. 명환이가 아까 만났던 그 아줌마들 생각이 났는지 여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가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다가 여러 명한테 핀잔을 듣는다. 그야말로 말 한 번 잘 못해 본전도 못 뽑은 셈이 되었다. 하기야 그런데 괘념(掛念)할 명환이가 아니지 않는가. 만식 형이 늘 하는 얘기가 왜 우리들은 무슨 얘기를 해도 재밌고 즐겁냐는 것이다.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다만, 오래 전부터 수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그 추억을 같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에는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언제 어느 때 만나더라도 우리들은 즐거운 것이리라.

  노적사로 향하는 내리막길은 그렇게 고즈넉할 수가 없다.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지금은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대화를 쉼 없이 하고 또 한다. 자란이가 이번 가을에 우리 회원들이 중국 태산(泰山)에 한 번 오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자란이네 공장이 있는 옌타이에서 자동차로 한 다섯 시간 쯤 떨어져 있단다. 허허벌판에 갑자기 약 1,500m 되는 큰 산이 우뚝 서 있는 형국이라 한다. 정상까지 대부분 계단으로 되어 있고, 한 쪽으로는 케이블카도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꼭대기 부근에는 하룻밤 자면서 태산의 기(氣)를 받기 위한 사람들을 위해 수많은 여관들이 있는데 여기에서 소비되는 물, 식량 등 각종 생활용품은 사람이 일일이 지어 나른다 한다. 옛 시조에도 있는 태산인지라 한 번 가고픈 곳이다. 우리들은 이 계획을 옌타이의 첫 자를 딴 Y-프로젝트로 명명하고 추진하기로 했다.

Y-프로젝트 추진키로

  노적사가 가까이 왔는지 만식 형이 어디 적당한 냇가에서 점심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 오신다. 이를 받아 양섭이가 나에게 좋은 장소를 찾아 볼 것을 권한다. 길 옆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그리 험하지 않다. 그 길로 정말 우리들이 점심 먹기에 아주 적당한 자리를 찾아 모두를 부른다. 자리 잡기 무섭게 모두 신발을 벗고 간단히 세족식을 한다. 잠시 후 우리들의 식탁이 차려진다. 김밥을 주로 한 소박한 식단이다. 이제까지 내가 보고 들어오던 토산모 식탁하고는 정말 대조적이다. 양섭이와 내가 가져 온 소주를 꺼내자 만식 형이 참치통조림과 소위 미제 멸치젓 캔을 내 놓는다. 소주 안주로는 물론 김밥에 얹어 먹으니 그 맛이 그만이다. 만식 형의 세심한 배려에 새삼 감탄한다.

  아마도 신선(神仙)들은 이런 데에서 즐겼으리라 상상해 본다. 나무 그늘 밑에 그리운 친구들과 함께 술잔을 돌리고, 옆에는 버들치가 한가롭게 물장난을 치고 있는 시냇물이 흐르는 바로 그러한 곳 말이다. 시장해 보이는 버들치들에게 참치를 잘게 부수어 나누어 주려고 일어서니 모두들 줄행랑이다. 아마도 내가 자기들을 해치는 사람쯤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자기 생존을 위한 그들의 몸놀림은 본능적이다. 잠시 후 앉은 채로 그들에게 김밥 한 개를 던져 주니 그때는 모두들 쏜살 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해체해 버린다. 놀라운 식욕이다.

  시장기는 해결했지만 발걸음은 그만큼 무거워졌다. 말로만 듣던 노적사다. 옛 사찰은 그대로 둔 채 앞에 현대식으로 절을 짓고 있다. 모든 기둥이 다 콘크리트다 보니 다 짓고 나도 어쩐지 절 맛이 덜 날 것 같다. 노적사를 끼고 노적봉을 향해 올라가니 제법 넓은 터가 나온다. 점심 먹기로 예정되어 있던 곳이다. 여기서 본 노적봉은 그야말로 온 하늘이 큰 바위 하나로 가득 찬 형상이다. 듬직하게 잘 생긴 바위다. 양섭이가 초등학교 소풍 때 여기를 다녀온 기억이 난단다. 종규가 용암문을 지나 이 쪽으로 오고 있다는 얘기다. 오늘 오전 일 마치고 오는 길이다. 제일 뒤에 오던 양섭이가 안 보인다. 무슨 일을 보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나중에 만난 그의 손에는 잘 생긴 지팡이 하나가 쥐어져 있다. 무릎이 불편한 자란이를 위해 내리막길에서 사용하라고 지극 정성으로 만든 것이다. 자란이가 감동을 받는다.

직접 만든 지팡이에 감동을 받고

  용암문에 이르렀다. 종욱 형이 예의 잔잔한 미소를 띤 느긋한 자세로 길섶에 앉아 있다. 요즘 몸 컨디션이 전과 같지 않아 주로 혼자 산행을 하다가 적당한 시점에서 합류한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대원의 수가 늘고 있다. 만식 형이 내게 우리 앞에 고결하게 서 있는 나무의 이름을 묻는다. 알 리 없다. 산딸나무라 한다. 일설에 그 꽃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 이 나무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만들었다고도 하는 나무다. 그럴 듯 하다. 이제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자란이가 무릎 통증으로 힘들어한다. 양섭이가 만들어 준 지팡이가 아니었으면 더 아팠을 것이다. 중섭 형이 우촌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들 내려오라고 재촉하는 전화가 온다. 상준이와 태형이도 합류하기로 되어 있다. 간만에 동기들이 거의 다 모였다. 비록 시작은 작았지만  끝은 제법 멋있었던 구자란 환영산행 이었다.
(許廷會記, 2005.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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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골 짧은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