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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song & photo
모음게시판[글/노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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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자 |
허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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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ㆍ작성일 |
2007/03/24 (토) |
| ㆍ분 류 |
글모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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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추천: 91 ㆍ조회: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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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마라톤 완주기
“두 마리 토끼를 잡다”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트랙으로 들어선다.
마치 우주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길고 길었던 105 리의 끝이 보인다.
힐끗 스톱워치를 본다.
3시간42분대를 가리키고 있다.
절로 안도의 숨이 나온다.
오늘 목표인 3시간45분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지막 직선주로를 달린다.
결승아치가 바로 눈앞이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3시간44분대로 휘니시라인을 밟는다.
순간적으로 무얼 하나 해냈다는 성취감이 희열과 함께 온 몸을 타고 흐른다.
3년만의 기록경신이다.
그것도 무려 5분이나 앞당긴 믿어지지 않는 기록이다.
작년에는 일곱 번 완주해 신기록은커녕 서브-4를 한 번도 못해 내심 실망도 많이 했다.
내 마라톤 최고기록은 영원히 3시간49분으로 굳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던 것이 드디어 오늘 일을 낸 것이다.
개인최고기록과 함께 불가능할 것 같던 보스턴마라톤 출전자격을 동시에 취득한 것이다.
그야말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그간 최고기록을 달성하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지만 허사였다.
매번 목표기록을 배번에 달고 달렸지만 언제부터인가는 슬그머니 떼어버렸다.
‘기록에 연연하지 말고 즐겁게 달리자’가 그 명분이었다.
그러니 기록이 좋아질 리 없었던 것이다.
벌써 네 번째 출전하는 동아마라톤이다.
작년에는 워낙 추워서 기록이 저조했지만 나머지 두 번은 서브-4를 했다.
그만큼 나와는 여러모로 궁합이 맞는 대회다.
오늘이야말로 올 마라톤농사에서 대박을 터트릴 호기라 생각했다.
오늘의 승리는 전략과 이를 제대로 실행한 결과다.
먼저 나의 달리기에 대한 정체성, 목적과 장기비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남과 구별되는 것이 무엇이며 왜 달리며 그 궁극적인 비전은 무언가 하는 것이다.
달리기에 대한 철학과 관념을 머릿속으로 다시 정리해 보았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지난겨울 부단한 노력을 했다.
매일 동네운동장에서, 주말이면 양재천과 한강에서 열심히 달렸다.
눈비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에도 실전처럼 연습했다.
2주전에는 대회 실전감각을 얻기 위해 풀코스대회에 나가 서브-4를 했다.
그 결과 체중도 작년에 비해 5Kg이나 빠졌다.
오늘 대회에 임하면서 목표를 정했다.
3시간45분짜리 5Km 구간 별 랩타임을 배번에 적었다.
일정한 속도로 달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간의 경험으로 그게 에너지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주법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오늘은 고등학교 동문들 다섯 명과 함께 달리기로 했다.
가슴에 ‘신일’이라는 모교명이 새겨진 멋진 유니폼이다.
경복궁역 역사 안에서 가볍게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짐을 맡기기 위해 대회장으로 갔다.
어둠이 막 가신 오전 7시, 광화문 앞 세종로는 온통 축제분위기다.
예년과 다른 게 있다면 광화문 개축을 위해 전면에 가림막이 쳐져있는 것이다.
기온은 영상 3~4도로 작년 영하 6도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된다.
지난주 일요일만 해도 꽤 추웠는데 예년보다 1주일 늦춘 덕을 크게 봤다.
날씨 핑계도 댈 수 없게 되었다.
잘 달릴 일만 남은 것이다.
자기 최고기록에 의한 그룹별 출발이다.
B부터 E그룹까지 포진되어 있는 우리는 최소율의 법칙에 따라 E그룹 전열에 섰다.
자기가 속한 그룹보다 앞에서 출발하면 부정출발로 실격되기 때문이다.
8시 정각 엘리트선수들이 출발한데 이어 우리 차례는 17분 후에 돌아왔다.
예년보다 진행이 많이 빨라졌다.
동문들끼리 파이팅을 외치고 연도관중들의 응원 속에 세종문화회관을 출발한다.
형형색색 유니폼의 2만 여 마라토너 행렬은 장관 그 자체다.
그 넓은 세종로가 비좁을 지경이다.
앞으로 치고나갈 여지가 전혀 없다.
그냥 무리가 흐르는 속도대로 가는 게 상책이다.
새로 단장한 숭례문을 뒤로 하고 을지로 입구로 향한다.
벌써 5가에서 반환해 돌아오는 선두그룹이 청계천으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달리는 동작이 역동적으로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달리기 능력을 타고 났거나 노력을 많이 한 사람들이다.
우리들의 영웅인 바로 서브-3 주자들이다.
그러면 우리들은 누구인가.
그들보다는 못하지만 달리기라는 건전한 중독에 걸린 사람들이다.
달리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지 자문해본다.
이루 꼽을 수 없지만 그중 건강과 친구가 다른 어느 것보다 앞설 것이다.
실로 건강해졌고, 또 많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다.
나는 누구에게 달리기를 권할 때 실내보다는 바깥에서 하라고 한다.
달리는데 덜 지루하고 또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은 마치 전생에 무슨 인연이나 있었던 것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
단지 달리기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이웃사촌이 돼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워밍업이 됐는지 몸이 가볍고 제법 잘 나간다.
이제까지 함께 달렸던 친구들이 처지기 시작한다.
30Km까지 동반주하기로 약속한 것과 목표달성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다.
작년 11월 중앙마라톤 때에는 이들 중 두 명과 30Km까지 함께 달려 완주했다.
이 많은 선수들 틈에 끼어 여섯 명이 함께 달리는 게 가능하지 않다는 판단을 했다.
나보다 15년 후배인 동권이와 한 짝이 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려 나간다.
을지로를 빠져나와 청계로로 들어선다.
길이 좁아져 운신의 폭이 더 작아졌다.
게다가 어떤 구간은 바닥이 울퉁불퉁해 달리기에 불편하다.
맞은편 청계로로 엘리트선수들이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달리고 있다.
비록 먼저 출발은 했지만 우리가 7Km 갈 때 그들은 벌써 16Km를 지난 것이다.
11Km 유턴지점인 고산자교를 지나니 주로가 좀 정리되어 간다.
한결 달리기가 쉬워진다.
워낙 뒤 그룹에서 출발해선지 이제까지 많은 선수들을 추월해 왔다.
그만큼 오늘 컨디션이 좋다는 증표다.
그렇지만 아직 시작이다.
마라톤을 할 때에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디서 어떠한 불상사가 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종로로 들어서니 연도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다.
그들이 있으니 더 힘이 난다.
엘리트선수들은 바로 이 맛에 그 힘든 훈련을 마다 않고 운동을 하는 것이리라.
맞은 편 차로에는 차량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휴일 아침 도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민축제를 참을성 있게 봐주고 있다.
가끔 아이들이 차창을 열고 우리들을 향해 파이팅을 외칠 뿐 어른들은 무덤덤하다.
언제쯤 우리도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을까.
흥인지문을 지나 신설동으로 향한다.
종로통 들어온 이래 완만한 내리막이 계속된다.
오늘의 동아마라톤 코스는 높낮이가 거의 없어 달리기에 편하다.
그만큼 기록경신을 위해 더 없이 좋은 대회인 것이다.
신설동오거리 직전 20Km 지점을 지난다.
내 배번에 적혀 있는 목표기록 1시간46분보다 약 3분가량 빠르다.
바나나 한 조각을 집어 든다.
아까 15Km에서는 파워젤 한 개를 섭취했다.
시장기가 오기 전에 에너지원을 보충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답지하차도를 지나 군자교를 향하는데 자원봉사자들이 이봉주의 역전우승 소식을 전한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뛰어난 선수들이 많이 출전해 아예 기대를 안 했는데 의외다.
나도 갑자기 더 힘이 난다.
서른일곱 나이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뤄 우승을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의 그칠 줄 모르는 마라톤에 대한 열정과 집념에 속으로 끝없는 찬사를 보낸다.
군자역에서 우회전한다.
드넓던 천호대로가 끝나고 어린이대공원을 향한다.
길이 바뀌니 기분 또한 새롭다.
주로가 좁아져 시민들의 응원을 가까이에서 들으니 발이 더 가벼워진다.
완만한 오르막이지만 리듬에 맞춰 힘차게 내딛는다.
어린이대공원역에서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내리막길에서 나머지 파워젤 한 개를 먹는다.
아침식사한 지 5시간이 지나도록 먹은 거라고는 파워젤과 바나나 한 조각뿐이다.
그런 걸 보면 나름대로 파워젤이 에너지보충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30Km 성동교사거리까지 지루한 직선주로를 용케 참고 잘 왔다.
예상시간보다 4분 정도 빠른 속도지만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아직도 안심이 안 된다.
지금부터 12Km가 바로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마라톤의 맛을 알고 난 후 주로 풀코스대회만 출전하고 있다.
하프대회는 달리다 만 것 같고 마라톤 이상은 또 다른 세계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울트라마라톤 후유증으로 인해 달리기를 포기한 경우를 주변에서 여럿 봤다.
가급적 오랫동안 달리기를 즐기자는 게 내 지론이다.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 자꾸 집중력이 떨어진다.
내 스스로 주문(呪文)을 건다.
나는 오늘 잘 달려 개인최고기록을 낼 수 있다고.
잠실대교 오르막길에 있는 35Km를 3분 빠른 3시간3분에 지난다.
속셈을 해본다.
남은 거리 7Km를 42분에 달리면 된다.
Km 당 6분, 100m를 36초 내로 달려야한다.
언뜻 3시간45분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작년 몸이 얼어붙을 뻔 했던 잠실대교를 지난다.
강바람이 불지만 작년 물 컵이 날아다닐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앞서가는 선수들이 많이 지쳐 보인다.
하나둘 추월해간다.
체중감량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팔치기가 잘 되고 있고 다리도 그리 무겁지 않다.
잠실대교 남단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내달린다.
롯데월드 취주악대가 활기찬 행진곡을 연주한다.
연도에 많은 시민들이 100리 가까이 달려온 선수들에게 힘찬 박수를 보낸다.
석촌호수를 끼고 오른쪽으로 선회한다.
이제 종점이 지척이라는 것을 아는 듯 선수들의 발걸음이 힘차다.
나도 그 보속에 맞춰 전진한다.
잠실종합시장 앞 40Km 급수대다.
자원봉사요원들이 마지막이라고 목청 높여 외친다.
배번에 적혀 있는 3시간33분보다 불과 1분 여 차이 밖에 안 난다.
물 마실 시간조차 아까와 급수대를 그냥 지나친다.
종합운동장 입구 오르막이다.
마지막 고비다.
양 옆에 있는 수많은 인파의 환호성에 엷은 미소로 답례한다.
주경기장 남직문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어느 때보다 가볍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오늘도 힘차게 달렸고 내일도 즐겁게 달릴 것이다.
(許廷會 記, 200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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