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깊은 밤하늘에 별들을 소쿠리 째 냅다 쏟아 부은 날. 인수봉 캠프사이트는 오랜만에 한가했습니다. 샘터 가장자리에 조르륵 물방울이 연달아 떨어지다가 멈춥니다. 수풀 속에는 푸드덕 푸드덕 산비둘기 짝짓기 하는 소리가 들려오고요. 주홍 텐트 안에 랜턴 불빛은 꾸벅꾸벅 마냥 졸고요. 오랜만에 선배들이 소맷자락을 걷어붙이고 부대찌개를 끓이다 코펠 뚜껑에 손가락 끝을 데어 화들짝 놀라 덜렁 나가자빠졌거든요. 그 순간에 콜맨 버너를 살짝 건드려 넘어뜨렸습니다. 땅바닥이 소시지, 두부, 양파 건더기와 뻘건 찌개 국물로 뒤범벅되어 난장판 되었습니다. 모두들 우왕좌왕.

     그런데 뒷짐지고 있던 새까만 후배가 남몰래 눈 흘겼죠. "어쭈. 야 임마, 너 뭘 봐. 얼른 치우지 못해." 일년 선배가 던진 말 한마디에 그 후배는 아무 말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 끙끙 앓았지요. 그러다가 왕고참 선배가 김치깍두기, 콩비지에 신나게 됫병소주 나발불고 땀나게 어깨 춤추며 산 노래를 고래고래 부르다가 제 풀에 꺾이어 그만 잠에 골아 떨어졌지요. 후배들이 뒤돌아서면서 눈 찡그리며 끌끌 혀를 찼지요. 반달이 동동걸음으로 서둘러 백운대 언덕빼기를 돌아서 넘어갔습니다.

     꼭두새벽에 선배들이 제일 먼저 깨어 일어나더니 누구는 닭죽을 쑤고 누구는 자일, 안전벨트와 카라비너를 챙기며 암벽등반 준비에 분주합니다. 또 누구는 후배들이 늘어지게 잠자는 텐트 폴을 툭툭 건드리면서 "야 이놈들아, 어서어서 일어나. 밥 먹어." 나지막이 말합니다. 모두들 졸린 눈 비비며 비실비실 일어나서 선배들과 즐겁게 식사를 하는데 건너편 인수봉 오아시스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소나무 한 그루 보였습니다. 늙은 소나무가 껄껄 웃었습니다. 아마 오늘 암벽등반이 모처럼 신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