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똑똑한 친구가 나에게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그토록 오르기 힘든 산을 왜 되풀이 되찾습니까. 나는 머뭇머뭇하다가 산이 그저 좋아 언제나 산을 되찾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만치 서있는 산이 날보고 빙긋빙긋 웃다가 그 친구 옆구리로 다가가서 나지막이 되물었습니다.

     어느 산동네 개구쟁이가 이른 아침에 소쿠리를 뒤집어쓰고 이 집 저 집 대문을 두드리고 막소금 한줌씩 얻으러 다니는지. 어느 산 어느 마을처녀가 왜 봄바람 하나에 귀밑 볼이 붉어졌는지. 어느 산동네 젖통 큰 선무당이 허벅지 흰 속살을 드러내놓고 홍역 앓는 떡두꺼비 삼대독자 머리맡에서 칼춤을 추는지. 어느 산 뒷동네 어느 맏며느리가 빚은 좁쌀 막걸리 맛이 가장 구수한지……

     어느 산길의 서낭당 추녀 밑에서 무녀리가 왜 도롱이를 겹겹이 걸치고 오래 서있는지. 어느 산지기의 짚신 머리에 서리꽃이 한 뭉치 피는지. 어느 산중턱에서 심마니가 예닐곱 냥쭝 산삼 뿌리를 쉽사리 캤는지. 어느 산동네 물레방앗간 앞을 지나가는 꽃상여 선소리꾼의 상엿소리가 구슬프게 메아리치는지. 어느 산사의 헌 누더기 걸친 큰스님이 내리치는 죽비 소리가 가장 맑고 고운지……

     어느 산 어귀에서 해질녘에 장승 할아버지와 장승 할머니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달맞이꽃 필 날을 기다리고, 무싯날에 읍내 장터로 느릿느릿 걸어가는 소달구지를 언제까지 눈바래기 하는지. 어느 산동네 기와집 문지방 아래로 드리운 밧줄에 빨간 고추와 숯 덩어리가 얼마나 달려있는지……

     어느 산 떡갈나무 위에서 아기다람쥐가 배꼽을 감추고 토끼잠 자는지. 어느 산마루 밑에서 부슬비 하나 맞으며 담비가 짝짓기 하는지. 어느 산골 쑥국새가 밤마다 쑥국 쑥국 슬피 우는지. 어느 산기슭 수풀 속에 애기고사리가 눈감고 꼭꼭 숨어있는지. 어느 산 어느 절벽에 병정개미가 줄지어 씩씩하게 기어올라가는지……

     어느 산 가을하늘이 텅 비어있는지. 어느 산 수풀 속에 쏟아지는 장대빗줄기가 가장 굵은지. 어느 산 어느 별이 가장 먼저 뜨다가 가장 늦게 지는지. 어느 산골짜기에서 산천어와 열목어가 물장구치다가 멱감고 신나게 헤엄치는지. 어느 산바람에 대숲소리가 가장 아름답게 들리는지……

     어느 산 들머리에 어느 들꽃과 풀꽃이 한 섬씩 피다가 지는지. 어느 산등성이에 항아리 째 쏟아부운 추석달빛이 가장 고운지. 어느 산동네 어느 감나무 끝자락에 달린 끈질긴 생명체가 언제 절로 떨어지는지. 어느 산 허리춤에 동짓바람이 냅다 회오리치다가 누그러지는지……

     그리하여 산 하나 하나가 밤낮 사방으로 내뿜는 싱그러운 냄새를 살과 가슴으로 맡아보고 산 하나 하나에 깊숙이 숨어있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사랑과 추억을 캐내어 배낭에 차곡차곡 담아둔다면, 책꽂이에 가지런히 꽂아둔다면, 내일의 삶이 조금은 넉넉해질 겁니다. 지난날의 어둠, 슬픔, 울분과 고통을 되새김하기보다는 과감히 떨쳐버리고 그 비인 자리에 아침햇살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자만이 현명합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산사람입니다.

     "대체, 산을 왜 되풀이 되찾습니까."라고 물었던 그 친구는 그제야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산은 언제에나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스승입니다. 참스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