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회원가족 방에서 이런 글을 읽은 적 있었습니다. "선배님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추석 다음날 처가에 가기로 굳게 약속해놓고 남편이 나 몰래 아이들 몰래 북한산에 갔습니다. 풀풀 술 냄새를 풍기면서 밤늦게 돌아왔습니다. 선배님들. 남편이 너무나 야속합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마음결 고운 후배 부인의 눈물겨운 사연에 눈길이 멈추었습니다.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선배들에게 자기 자신의 분한 속마음을 이토록 훌훌 털어놓았을까요.

     왜 하필 그 후배는 추석 산행을 아내 몰래 혼자서 즐겼을까요. 산에 미쳐도 진짜 되게 미쳤던 겁니다. 아마도 산행하는 동안만큼은 초가을 단풍구경에 아내와 아이들 얼굴을 잠시 잊었겠지요. 그날 밤 아내에게 구구한 변명을 잔뜩 늘어놓다 손치더라도 쉽사리 용서를 얻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나는 큰일 났다 싶어서 부랴사랴 그 후배에게 편지 한 장 띄었지요.

                    친구

                    그대가 끼니때마다  

                    더운 밥 한술을 푹 떠서 제대로 먹으려면

                    해돋이산행에서 맑은 술 한잔을 즐기려면

                    지금 바로 바로 지금

                    아이들과 아내 눈앞에서 무릎 모아 꿇고

                    손금이 닳고닳도록 쓱싹 쓱싹 빌게

                    아직 늦지 않았네

                    산 친구

                    그대여 휘영청 추석 둥근 달이

                    산꼭대기 넘어 오다가 가만히 서있으면

                    서둘러 아이들 고사리 손을 꼭 붙잡고

                    그대가 사랑하는 아내 허리를 꼭 껴안고

                    함께 동그라미 하나 크게 크게 그리며

                    함께 달맞이꽃동산에 웃으며 오르게

                    그래도 늦지 않았네

                    내 친구

                    그대 등뒤에서

                    그대만을 내내 바라보는 아내 눈빛은

                    징검다리를 건너가는 담비 눈빛보다

                    화단 귀퉁이 단풍나무보다 맑고 곱네

                    백합 한 송이를 든 아내를

                    오늘부터 더욱 고이고이 섬기게

                    내일이면 늦을 것이네.

     문득 옛일이 생각났습니다. 결혼 신접살림한지 얼마 안되었지요. 미련한 나는 아내 생일날을 깜박 잊은 채 선인봉 허릿길을 찾았습니다. 그날 곤드레만드레 술에 취해서 자정이 다되어서야 집에 들어섰지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날 바라보는 아내 눈초리가 여간 심상치 않았습니다. 집안 곳곳에 먹구름이 짙게 깔렸을 뿐 아니라 이것을 말끔히 거두는데 보름이 족히 걸렸거든요. 그때에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렇습니다. 애처가란 말은 남정네와 아낙네들 사이에서 들리거나 부르기에 조금은 아름다운 말이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