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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정회        
작성일 2007/04/13 (금)
분 류 글모음
ㆍ추천: 93  ㆍ조회: 2386      
뜻 깊었던 숙자씨와의 미팅
「‘거리의천사’ 야간사역기」

                                       뜻 깊었던 숙자씨와의 미팅


정녕 인간의 배움은 끝이 없는 모양이다.
어제 밤의 경우가 그랬다.
말부터 생경(生硬)한 ‘노숙인 야간급식 사역’에 나섰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가 그들에게 무얼 해드린 게 아니고 많이 받고만 왔다.
비록 짧은 몇 시간이었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고 또 인생을 배웠다.

인간의 편견은 그 끝이 있을까.
어제 밤 ‘사건’ 전만 해도 나의 노숙인에 대한 관념은 일반인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더럽고 냄새나고 술주정하고 추태부리고 게으르고, 뭐 대충 이렇지 않았을까.
그러나 밤 10시 반부터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정신교육’과
그 후 두 시간 정도의 ‘실전’을 통해 그들을 보는 나의 눈은 180도 바뀌었다.

본질적으로 그들과 우리는 같다는 것.
저들이 뜻하지 않게 거리로 내몰린 것처럼 우리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저들에게 감사해야 된다는 것.
왜냐하면, 사회구조역학 상 누군가가 마름모의 밑 꼭짓점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저들이 우리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어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먹고 잘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를 교육시키는 ‘섬김의 집’ 진무두 팀장은 열정의 화신(化身) 같았다.
여러분은 저들에게 밥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끼리 얘기하지 말고 저들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휴대폰도 사용하지 마세요.
저들이 필요한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담긴 웃음입니다.
저들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의 말씀을 하십시오.
맛있게 드세요. 감기 조심하세요. 건강하세요. 힘내세요.

한 시간에 걸친 교육이 그렇게 빨리 지나갈 수 없었다.
각자 업무를 분장 받은 후 급식거리를 싣고 네 대의 차로 나눠 타고 이동했다.
우리 동문회에서 준비한 맥반석구이 달걀과 컵라면, 온수, 밥, 단무지, 보리차 등이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지하철 을지로3가역이다.
약 사오십 명의 노숙인들이 일렬로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처음 목도한 광경이다.
이들은 지하철이 끊길 무렵부터 역사에 하나둘씩 모여들어 식사 후 잠을 청한다 한다.

진 팀장 진두지휘 하에 배식 준비를 한다.
식사 전에 ‘거리의 천사’-그들과 봉사자를 뭉뚱그려 부르는 용어다-들이 기도를 한다.
서툰 솜씨로 계란을 배급한다.
어떤 말을 건네야 할 지 말문이 안 떨어진다.
눈을 잘 마주치려하지 않지만 가끔 마주친 그들의 눈은 선하기 그지없다.
그러기에 이들은 이런 힘든 삶을 사는 걸까?

영화관에 들어가 한참 있으면 옆 사람이 보이듯 주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 쪽에는 이미 주무시는 분들도 있다.
배고픈 것보다 잠이 우선인 분들이다.
종이박스를 조립해 그럴듯한 거처를 만든 분도 있지만 대부분 변변히 덮을 것조차 없다.
그곳을 떠나면서 그들 머리맡에 계란 한 봉지씩 조용히 남겨 놓고 간다.

일사불란하게 짐을 꾸려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을지로입구역이다.
3가역에서는 바깥에서 배식을 했는데 이곳은 안으로 들어간다.
중앙 홀이 꽤 넓다.
줄잡아 150여 명의 노숙하시는 분들이 정렬해 있다.
이들 중에는 서너 명의 여성도 보인다.
우리나라의 여성 노숙인 비율은 3% 정도로 외국의 40~60%보다는 훨씬 낮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아까도 그랬지만 이들의 질서정연함이다.
심지어 통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통행로에는 약간의 여유 공간을 둔다.
어떻게 보면 비노숙인보다 낫다.

라면을 먹고 있던 한 분이 내게 묻는다.
“갈아입을 티셔츠 있어요?”
앗!, 교육시간에 배우지 않았던 질문이다.
이들에게 현금이나 생라면은 주지 말라고 배웠다.
현금은 알겠는데, 생라면은 왜?
아침에 먹을 게 있으면 게으름을 펴서 주지 않는다 한다.
진 팀장을 찾으니 언뜻 보이지 않는다.
그들과 한데 어울려 있는 그를 간신히 찾아 물어보니 오늘은 준비해 오지 않았다 한다.
바깥에서는 그 흔한 티셔츠 한 장이 여기서는 그렇게 귀한 물건인 것이다.

계란 배식을 하는데 우리보다 연배인 말쑥하게 생긴 분이 말을 건넨다.
“오늘은 어른들이 많이 오셨네요.”
머리가 희끗희끗한 우리 친구들을 보고 일컫는 말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인가?
좋다는 말인가, 아니면 불편하다는 말인가.
직접 물어 볼 수도 없고, 답답하기만 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평소에는 주로 젊은 사람들뿐이었는데
오늘은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도 관심을 가져주니 좋다는 뜻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제외하고 오늘 사역자의 대부분은 20대 남녀 청년들이다.
주로 교회에서 봉사 나왔고, 어떤 분들은 소위 혼자 나온 ‘독립군’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산교육의 현장인가.
우리들도 많은 것을 배우는 데 앞날이 창창한 이들은 앞으로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정말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멋있는 청소년들이다.

다음 목적지는 서울시의회 지하도이다.
가기 전 시청 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이미 두 번에 걸친 배식으로 준비해 간 온수가 떨어졌기 때문에 중간보급을 받아야 한다.
고맙게도 인근에 있는 두 곳의 ‘세븐일레븐’에서 편의를 봐주고 있다.
어떤 때는 유통기한 만료 직전의 빵도 얻어 와 배급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이 도착하자 누워있다 말고 일어나 줄을 선다.
불과 이삼십 명의 소규모 노숙처이다.
예의 식사기도를 하고 배식에 들어간다.
이제는 배식이 제법 손에 익었고 말도 자연스럽게 건넨다.
“손에 익으면 끝날 때 됐다”는 옛 말대로 오늘 사역의 끝도 그만큼 가까이 온 것이다.

벌써 새벽 한 시가 넘었다.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
종점인 종각역에 도착했다.
이십 여명 정도다.
이 중 대여섯 명은 둥그렇게 둘러앉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다.
진 팀장이 나타나니 반갑게 맞이한다.
내가 보기에 그들과 진 팀장과는 친구 이상의 관계이다.

오늘 다녀온 어느 곳에서도 이들끼리 소란을 피우거나 불미스런 모습은 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비노숙인보다 우울증 3배, 공포증 4배, 적대감은 무려 8배에 달한다 한다.
어떤 이는 비노숙사회에서 악취가 더 난다고 나가려 하지 않는다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맞는 말이다.

이렇게 오늘 밤 뜻 깊은 (노)숙자씨와의 만남을 마쳤다.
하루 이틀, 한두 달도 아니고 무려 10년째 이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니 이들은 진정 천사다.
새벽 운동 하느라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왠지 머리는 맑기만 한다.
이런 기회를 갖게 해준 신일동문회 염재호 회장과 이금철 사회봉사위원장에게 감사드린다.
(許廷會 記, 2007.4.12)
이름아이콘 김동환
2007-04-16 11:53
 우리사회의 천사는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한마음을 가지고 베풀고 나눔을 가지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천사들이 사회의 썩고 혼탁함을 맑게 해주는 촉매제 역활을 해 주고 있고요

당신도 천사가 되었군요.

시간이 없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생각만 하고" 언제한번"으로 미뤘던 일들을
지금 할줄아는 사람이야말로 용감한 우리사회의 천사가 될수있습니다
숙자와의 만남을 실천할수있는 기회를 우리에게도 안내해 주는군요. 감사합니다 !
   
이름아이콘 박학수
2007-04-18 10:37
 정회형, 잘 읽었습니다. 버지니아대 총기사건으로 온 나라가 충격에 휩싸여 있고, 그 범인의 부모도 자살기도했다는 소문까지... 너무너무 부끄럽고 혼란스러운 아침에 아름다운 천사들의 얘기가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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